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지음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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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았을 때 너무 좋았었고 왠지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기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전혀 아름답지가 않았습니다. 달콤하거나 아삭하지가 않고 너무 비릿한 맛이었어요.
「아오리를 먹는 오후」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젋다 못해 너무 어린 아이들이 폭력과 비윤리적인 삶에 노출되어 있는 데, 부모들이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무정)에서는 부모가 이혼하고 만화작가인 고모집에서 얹혀사는 아이, 아버지는 매달 돈을 보내주는 것만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하며 성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고
제목이 왜 (림보)인지는 잘 모르겠던 이 단편에서는 지하실에 세를 내준 부부와 부부의 집안을 마음대로 다니며 괴이한 노래를 부르는 아이와 빨래를 널고 일하러 나간 여자가 (문틈)에서는 방문을 잠그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소년이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순정이를 임신시키고 (절대온도)에서는 가출청소년들이 한집에서 남녀구분없이 동거하는 등 보호자라는 존재자체가 없거나 있다고한들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온갖 범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맨홀)은 엄마가 딸이 낳은 아이로 환생하여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오! 해피)는 설비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이처럼 소변을 지리는 엄마와 한번 결혼을 하였으나 기면증으로 인해 다시 엄마의 곁으로 돌아온 딸이 돈도 집도 없어지고 아들같던 강아지 해피마저 죽어버려 오도가도 못한 신세가 되어 딸이 잠시 일했던 모델하우스에서 잠을 청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소설집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단편이 표제작 (아오리를 먹는 오후)와 등단작 (내 이름은 나나) 두 편인 데, 역시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아이가 나오는 데 둘다 여고생으로 추정됩니다. (내 이름은 나나)에서는 오토바이로 묘기를 부리며 도시의 도로를 마치 자기 집 안방마냥 휘젓고 다니는 이른 바 폭주족, 그 폭주족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겁없는 수완과 그 옆에 수완의 허리를 꽉 붙잡고 함께 달리는 역시 겁없는 진짜이름이 아닌 나나가 통제가 어려운 세상을 절제하지 못한 채 달려가고 있으며, (아오리를 먹는 오후)에서는 첫 생리를 하던 순간에서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여고생이 엄마와 만나던 삼촌과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중 삼촌에 의해 목소리조차 지를 수 없게 되어버린 채 자신을 찾으러 올 엄마를 포함한 사람들을 내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두 편의 단편이 제게 가장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저도 한 때는 아이였을 시절이 있었는 데 물론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았지만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제가 아이였을 시절에 그냥 너무 의미없이 보낸 것 같아 후회가 조금씩 밀려오네요. 그 게 나쁜 일이던 좋은 일이던 간에 뭐라도 기억에 남는 것을 했어야 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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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10-22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훼이크네요-:-)

물고구마 2016-10-22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어요. 「아오리를 먹는 오후」라는 표현이 여고생의 시점보단 여고생이 목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게 만든 삼촌의 시점에서 보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새파란 아오리(사과품종)를 씨방까지 먹는 삼촌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