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게으른 저는 평소에는 게으른 성향대로 게으르게 살았죠.

게으르게 살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벼락치기를 합니다.

이게 습관이 된 것일까요?^^;;

저번 주말과 이번 주 초에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몰아서 막 읽었습니다.

이런 걸 '벼락독서'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벼락독서'라고 하니 뭔가 이상하네요.

뭔가 벌 주는 느낌도 있고...^^;;

다른 단어를 한 번 생각해봅니다.

폭풍독서?

폭풍처럼 마구 읽어대는 독서라고 생각하니 뭔가 느낌은 맞네요.

그런데 왜 '폭풍독서'라고 하니 '폭풍설사'가 생각나죠. ㅎㅎㅎㅎㅎ

폭풍설사를 떠올리니 뭔가 이상해지네요.

어찌되었든, 저는 지난 주말와 이번 주 초에 마구 독서를 해댔고,

그 결과 리뷰고 뭐고 다 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조금 생각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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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본을 읽자 북클럽 자본 시리즈 1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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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4.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3)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곳의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면 자본주의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고,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중세 봉건제 사회의 인간이 되는 것이고, 수렵채집 사회에 산다면 수렵채집사회에 맞는 인간이 되는 것이죠. 반대로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사는 인간이 갑자기 자본주의적인 인간이 될 수가 없고, 수렵채집 사회에서 사는 인간도 순식간에 계산적이고 돈에 집착하는 자본주의적인 인간이 되기는 힘듭니다. 마르크스는 그 사실을 전제하고 묻습니다. '당신이 사는 자본주의 사회란 무엇인가?'라고.

자신이 사는 체제 혹은 구조에 대한 이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게끔 합니다. 일명 '낯설게 하기'.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라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자신이 살던 세상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이들이 '낯설게 하기'라는 효과를 통해 세상을 조근조근 따져보는 것입니다. '왜 지금의 세상은 이런 구조를 가지게 됐지? 왜 체제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지?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하는 식으로.

마르크스가 던졌던 질문을,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독자가 하게 되는 순간, 세상으로 향하는 마르크스의 시선은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독자와 하나가 됩니다.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상황의 특수성을 포착하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합리적이다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정치경제학의 사후정당화는 그런 시선을 가진 이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가렸던 더께는 사라졌으니까요. 마르크스의 책을 읽은 독자가 이제 할 일은, 더께가 사라진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고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치 마르크스가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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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4.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3)

총페이지:180p

읽은 기간:2021.5.1

특이사항: 세번째 읽었음

읽은책에 대하여:

<다시 자본을 읽자>는 오늘 처음 시작하는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이다. 모임 준비를 한다고 <자본>에 관련된 여러 책을 읽었고, 이 책도 저번에 미리 읽어두었다. 오늘은 모임에 맞추어 다시 읽었고. 신기한 건, 세번째로 읽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읽기가 지겹지 않다는 사실. 읽을 때마다 지루하지 않고 잘 읽어 나간다는 건, 이제 내가 책을 읽음에 있어서 재독, 삼독, 사독을 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독을 했을 때는 책에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단어에 가장 관심이 갔다. 마치 정치경제학이라는 단어만 다른 단어들 보다 커 보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이번에는 정치경제학에는 관심이 안 가고, 시야나 역사성, 당파성, 입장, 힘, 변증법, 역설, 패러디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저번에 읽을 때보다 더 두루두루 책에 관심이 갔다고 해야하나. 독서 자체가 하나의 중심으로 모여드는 기분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들을 두루두루 살피는 다극적인 느낌의 독서를 했다고 해야할까.

내가 서 있는 삶의 기반이 자연스럽고, 정당하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주어진 것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산물로서 형성된 것이라는 인식을, 마르크스와 <자본>이 준다는 사실을 세번째로 파악하니, <자본>도 그렇고, <다시 자본을 읽자>도 계속해서 읽어볼 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카프카의 말처럼, <자본>과 <다시 자본을 읽자>가 기존의 인식을 깨는 도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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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읽은 책

총8권

53.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우치다 타츠루,이시카와 야스히로(2)

54.자본론을 읽다-양자오(2)

55.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2)

56.자본론 공부-김수행(2)

57.인간 불평등 기원론-장 자크 루소

58.마르스의 자본,판도라의 상자를 열다-강신준(4)

59.공리주의-존 스튜어트 밀

60.밤의 이발소-사와무라 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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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민주와 공화를 웅변하다 문명텍스트 16
플루타르코스 지음, 김헌 주해 / 한길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8333.두 정치연설가의 생애-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는 <생애의 비교>를 쓰면서 인물들을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물들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두루 말하며 인물들의 삶을 서술합니다. 인물들의 장단점을 두루 보여주는 서술을 한 뒤에 그는 두 인물을 비교하는 방법을 씁니다. 여기서 플루타르코스가 보여주는 건, 인물들이 영웅적인 행적을 보여주는 영웅이긴 하지만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려내는 인물상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영웅상입니다.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에서 나오는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약점들이 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결정적인 마케도니아군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무기력함을 보여줍니다. 키케로는 명예욕에 취해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인물이고, 지나친 독설과 풍자로 많은 적들을 만드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약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권력에 저항한 용기를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재능과 명성이 있어서 굳이 행동하지 않았으면 풍파를 겪지 않고 조용히 평안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주장하고 행동했다 화를 겪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을, 굳이 하는 바람에 제 명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처세술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도 될 일을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커다란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일을 했고, 부드럽게 처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 있는 인물로서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한 인물들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처세술과 커다란 역사의 대립 속에서, 두 인물은 용기 있는 영웅상으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이야기하는대로 인간적인 영웅으로서. 저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서술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역사의 평가는 흘러가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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