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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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8.러브크래프트 전집1-H.P. 러브크래프트

 

 

눈앞에 보이는 여백 앞에서 글을 쓰기 위해 손을 움직여야 하지만 글은 써지지 않는다. 당연히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의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데, 막상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대한 글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생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서 독서노트에 기록한 모든 책들에 대한 서평을 써야하지 않을까? 그걸 달성하는 게 가능할까? 죽기 전까지 달성하리라는 목표를 잡고 한다면 가능할까? 그게 가능하려면 얼마만큼의 서평을 써야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아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의 서평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생각으로 돌아오려다가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인상적으로 읽었던 공포소설은 뭐였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공포특급' 같은 책을 제외한다면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이 아닐까? 그래, 포의 공포 소설 인상적이었지.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붕괴, 윌리엄 윌슨, 붉은 죽음의 가면, 함정과 진자, 고자질쟁이 심장, 아몬틸라도 술통... 포 다음으로 내게 큰 인상을 준 공포소설 작가는 스티븐 킹이지. 스탠드, 애완동물 공동묘지, 샤이닝, 캐리, 그것, 미스트, 언더더돔... 스티븐 킹에 버금간다는 딘 쿤츠 같은 작가도 있지. 낯선 눈동자, 살인의 기술, 검은 비밀의 밤, 살인 예언자 시리즈... 일본의 미쓰다 신조의 공포소설도 재미있지. 작가 시리즈에 포함된 기관:호러 작가가 사는 집, 작자미상, 책은 두 권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사관장과 백사장, 노조키메, 괴담의 집, 일곱 명의 술래잡기, 괴담의 테이프, 화가, 흉가, 마가...

 

 

내가 읽었던 공포 소설 작가들과 그들의 책을 떠올리다 다시 돌아온다. 맞아, 나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대하 리뷰를 쓰려고 했지. 그래, 러브크래프는 어떻지. 작가들의 작가, 불운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사후에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부활한 작가, 가난 속에서도 특유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을 고수한 작가, 공포와 SF,판타지를 결합한 코스믹호러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한 작가, 크툴루 신화라는 공포의 신화를 남긴 작가...

 

 

결국은 분위기다. 러브크래프트가 명성과 돈을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수했던 기과함과 공포스러움으로 점철된 그의 소설들의 핵심은. 그 기괴하고 이상하고 유별나며 이세계스러운 공포의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의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소설에 불과하고.

 

 

여기까지 적고 생각은 다른 곳으로 흐른다. 아마도 글이 끝나고 나서도, 나의 생각은 끝없이 끝없이 표류할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읽고 내 안에 남겨진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품에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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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 민음의 시 101
김경후 지음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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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0.그날,말이 돌아오지 않는다-김경후

 

 

나는 분명 시를 읽었다. 분명 시를 읽었는데, 시는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시로 쓰여진 언어는, 그게 시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뭉쳐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암호해독과 같은 고투를 거쳤지만, 눈 앞에 놓인 시라는 암호는 해독이 되지 않았고, 암호해독에 실패한 나는 이 시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알라딘에 들어가시 이 시집의 소개글을 읽는다. '시편들은 하나같이 언어에 저항하는 시인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 보인다. 언어에 저항하고 있다라... 언어에 저항하고 있다면 기존에 쓰이는 언어의 사용, 용법, 맥락에 저항하여 자신만의 언어 사용법을 만들어낸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만의 언어 사용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글을 더보니,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보다는 시인의 상상력과 시적 일탈을 보여주기 위한 시임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적혀 있는데, 의미전달 보다는 자기 자신의 상상력과 시적 일탈을 보여주기 위한 시가 읽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내가 이해 못했다고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집을 이해 못했고, 읽는 게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왜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지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시집에 나오는 시들의 분위기가 어딘가 괴이하고 이상한 것도 시 읽기를 힘들게 했다.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붙을 수 있을 정도의 시들 앞에서 나는 힘들고 괴롭게 시들을 다 읽고 책을 덮었다. 책을 덮어서 다행히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럼에도 시는 시에 불과하다. 시에 불과하기에 좌절 없이 나의 시 읽기는 지속된다. 동시에 시는 시라서 읽을 가치가 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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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557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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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3.빛의 자격을 얻어-이혜미

 

 

시집을 읽을 때마다 시는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내 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채로. 나는 그저 내 몸에 남긴 시의 흔적을 훑을 뿐이다. 다양한 감정의 편린을 불러 일으키는 시의 흔적들은 내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마다, 시집마다 다르다. 때로 어떤 시, 시집은 내게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어떤 시, 시집은 알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을 남긴채 사라져간다. 또 어떤 시, 시집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외에도 시들, 시집들은 내 몸속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간다.

 

 

<빛의 자격을 얻어>는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이 시집을 읽었다. 분명 이 시집의 시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시집의 시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게 남긴 흔적들을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딱 꼬집어서 뭐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의 시들.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시집의 시들을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 이 시집의 시들은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아름답다. 이 시들이 펼쳐내는 언어들이, 시인이 시를 쓰면서 형상화한 시의 언어들이, 내게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예술적 아름다움은 어쩌면 내 삶과는 상관이 없는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며 시적인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 말은 틀린 말 같다. 이 시들의 아름다움은 내 삶과 상관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피상적이지 않다. 이 시집의 아름다움은 시인이 창작활동의 고투를 통해 건져올린 시적인 현실의 산물이다. 시인이 구축한 시적 세계에서 이 시들은 충분히 시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이다. 시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시적 현실성을, 나는 시집을 읽는 독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 독서의 끝에서 내 현실과 시인이 구축한 시적인 현실은 만난다. 시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이 시적인 아름다움은 내 삶의 아름다움과 하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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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 개정판 민음의 시 12
정호승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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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0.새벽편지-정호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새벽편지>를 읽고, '한 때 우리가 뜨거웠던 시간이 있었다'라고 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우리에 내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간이 없었다. 나 개인의 삶에서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집합적인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절은 내 삶을 돌아보건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 시절은 짧았고 내세울만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절을 찾아본다. 우리로서 뜨거웠던, 그 잃어버린 시간을 <새벽편지>를 읽으며.

 

 

1987년에 초판이 나온 정호승 시인의 <새벽편지>는 내가 속하지 않는, '우리가 뜨거웠던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그 시절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와 자유를 부르짖었던 무수한 청춘들의 시기를 지나갔던 시인은, 지나간 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아름답고 쓸쓸하며 서정적인 시의 묶음으로 엮어낸다. 나같이 그 시절을 지나가지 않았던 사람은 시인이 엮어낸 그 시절의 삶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추체험해본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겪은 적도 없는데 겪은 것처럼.

 

 

나는 그 시절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그 시절의 삶을 써내려간 시를 읽는 것은, 겪지 않은 일을 겪는 가상의 경험이다. 이걸 상상력에 기반한 경험이기 때문에, 판타지라고도 바꿔쓸 수도 있다. 판타지라고 바꿔 쓰는 순간, 무언가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새벽편지>를 읽는 건 환상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건 시대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며, 뜨거웠던 우리로서 살아가지만 그때 '우리'들이 느끼고 받았던 고통과 슬픔과 힘겨움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라서 행복하거나 즐거운 게 아니다. 그 시절은, 내가 겪지 않았던 '우리'들은, 뜨거웠지만 고통스러웠고, 힘겨웠지만 단호했다. 사회에 나온 시절부터 집단적인 우리로서의 열정보다는, 오직 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회를 살아왔던 내게는, 그 시절 삶의 모습이 특별하고 눈물겹다.

 

 

시인을 따라, 내가 겪지 않은 그 시절을, 마치 겪었던 것처럼 겪으며,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그 시절을 '잃어버린 시절'로서 재구성한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잃어버린 것처럼 그 시절을 재구성하며, 나는 존재한적 없는 나의 그 시절을 상상해낸다. 우리라는 '공통의 경험'을 상상하며 나는 꿈꾼다. 나가 우리가 되어 함께 뜨거워지는 순간을. 시인이 <새벽편지>를 독자에게 띄우며 실려보낸 상상력의 힘이 내게 전해져 이뤄진, 이 상상력의 마법 앞에서 나 또한 시인처럼 나만의 새벽편지를 보낸다. 내 마음속 '우리'가 되기를 꿈꾸는 가상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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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2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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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3.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마종기

 

 

한문이라는 낯선 타자...

 

 

제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속 이어지는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글을 쓰자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계속 뭔가 이어지네요. <, 만들어진 위험>의 리뷰를 쓰는 척하며 제 안에 있던 이야기를 했던 게 계속 이어지니 신기하네요. 무한히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에 홀린 듯한, 나도 모르는 어떤 에너지의 끌림에 따라서 계속 글이 써지는 듯한...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계속 써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쓰게 됐네요. <, 만들어진 위험>에서 '유일신의 공백상태'로 지냈던 제 삶을 고백하고, <신을 옹호하다>에서 제게는 너무나 낯선 '유신론'을 만난 걸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낯선 타자는 '유신론'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났던 낯선 타자 이야기를 이 글에서 한 번 해보려합니다.

 

 

시작은 시읽기였습니다. 한때 저는 시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창비,문지,문학동네,민음사,실천문학,문예중앙에서 나온 시들을 쭈욱 읽어왔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를 끊었습니다. 마치 뭔가에 중독된 사람이 자신을 중독시킨 물질을 끊는 것처럼. 제가 왜 시를 끊었는지, 시의 ''자도 쳐다보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흐름이 흘러갔다 지나가는 것처럼, 시를 읽는 흐름이 사라져간 것일 수도 있죠. 그러나 중독이 뭔지 아시는 분들을 아실 건데요, 사실 진짜 중독 상태가 되면 중독을 불러일으킨 물질을 끊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중독자에게 중독물질을 끊는 건, 단지 잠시 중독된 물질을 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시를 끊은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예 없이 잘 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 그리워지는 거에요. 다시 시를 읽어야겠다, 언젠가는 읽어야겠다 하는 식으로. 말은 많이했습니다. 실행은 하지 못했죠.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최근에야 시집을 펼쳤습니다. , 얼마나 좋던지. 어떤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책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와 눈이 부시는 경험을 했다고 해야하나? 제가 읽은 시집에서 마법의 힘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새롭게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제 나름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집들을 한 번 순서대로 읽어보자 식으로. 그래서 저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을 1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1번 시집인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문제없이 잘 넘어갔습니다. 다음으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2번 시집인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펼쳤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펼칠 때부터 뭔가 불안했습니다. 글자 모양부터, 인쇄의 느낌이 확 예전 느낌이 나는 거에요. 고전적이라서 매력적인데 하는 생각으로 아무생각 없이 읽는데... 읽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히도 제가 읽지 못하는 한문들이 눈앞에 마구 나타나기 시작한겁니다. 몇 글자가 나타난 건 괜찮았는데, 읽다보니 한문이 시야를 가득 채우더군요. 한문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지니, 도저히 어찌할 줄을 모르겠더군요. 추측해보건데, 저는 최근의 판본이 아니라 예전 판본을 저도 모르게 읽은 것 같습니다. 독자가 한문을 당연히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인이 써내려간 무수한 '한문의 바다'가 펼쳐지는데, '한문세대'도 아니고 한문과 친해져본 적이 없는 저는 그 한문의 바다 앞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난파선을 탄 기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시의 언어라는 형태로 나타난,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한문이라는 타자 앞에 선 상황.

 

 

<신을 옹호하다> 리뷰에서도 썼지만, 저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을 따라서, 타자라면 제가 이해할 수 없고 낯선 존재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타자의 정의대로라면,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서 나타난 무수한 한문들의 더미는 타자가 맞습니다. 타자가 맞으니,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타자와 함께한 경험을 한 셈입니다. 물론 타자는 이해하기 쉽지 않고 낯선 존재이지만, 저는 소통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었으니까요. 이해도 못했고 뭘 읽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읽었습니다. 읽었긴 했는데,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눈앞으로 종이가 스쳐 지나간 기분입니다. 분명히 눈앞에 글자가 보이는데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 제목이 딱 맞네요. 시집 제목에 들어간 '안 보이는' 이라는 단어처럼 저는 시집을 봤지만 안 본 것이니까요.ㅎㅎㅎ 어쨌든 봤지만 안 보이는 시를 읽은 경험을 한 저는 이 시집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문더미가 아니라 한글이 많은 시로서. 그때서야 이 시집과의 제대로 된 만남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리고 역시 타자와의 만남은 너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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