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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 개정판 ㅣ 민음의 시 12
정호승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8550.새벽편지-정호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새벽편지>를 읽고, '한 때 우리가 뜨거웠던 시간이 있었다'라고 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우리에 내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간이 없었다. 나 개인의 삶에서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집합적인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절은 내 삶을 돌아보건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 시절은 짧았고 내세울만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로서 뜨거웠던 시절을 찾아본다. 우리로서 뜨거웠던, 그 잃어버린 시간을 <새벽편지>를 읽으며.
1987년에 초판이 나온 정호승 시인의 <새벽편지>는 내가 속하지 않는, '우리가 뜨거웠던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그 시절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와 자유를 부르짖었던 무수한 청춘들의 시기를 지나갔던 시인은, 지나간 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아름답고 쓸쓸하며 서정적인 시의 묶음으로 엮어낸다. 나같이 그 시절을 지나가지 않았던 사람은 시인이 엮어낸 그 시절의 삶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추체험해본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겪은 적도 없는데 겪은 것처럼.
나는 그 시절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그 시절의 삶을 써내려간 시를 읽는 것은, 겪지 않은 일을 겪는 가상의 경험이다. 이걸 상상력에 기반한 경험이기 때문에, 판타지라고도 바꿔쓸 수도 있다. 판타지라고 바꿔 쓰는 순간, 무언가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새벽편지>를 읽는 건 환상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건 시대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며, 뜨거웠던 우리로서 살아가지만 그때 '우리'들이 느끼고 받았던 고통과 슬픔과 힘겨움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라서 행복하거나 즐거운 게 아니다. 그 시절은, 내가 겪지 않았던 '우리'들은, 뜨거웠지만 고통스러웠고, 힘겨웠지만 단호했다. 사회에 나온 시절부터 집단적인 우리로서의 열정보다는, 오직 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회를 살아왔던 내게는, 그 시절 삶의 모습이 특별하고 눈물겹다.
시인을 따라, 내가 겪지 않은 그 시절을, 마치 겪었던 것처럼 겪으며,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그 시절을 '잃어버린 시절'로서 재구성한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잃어버린 것처럼 그 시절을 재구성하며, 나는 존재한적 없는 나의 그 시절을 상상해낸다. 우리라는 '공통의 경험'을 상상하며 나는 꿈꾼다. 나가 우리가 되어 함께 뜨거워지는 순간을. 시인이 <새벽편지>를 독자에게 띄우며 실려보낸 상상력의 힘이 내게 전해져 이뤄진, 이 상상력의 마법 앞에서 나 또한 시인처럼 나만의 새벽편지를 보낸다. 내 마음속 '우리'가 되기를 꿈꾸는 가상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