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557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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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3.빛의 자격을 얻어-이혜미

 

 

시집을 읽을 때마다 시는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내 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채로. 나는 그저 내 몸에 남긴 시의 흔적을 훑을 뿐이다. 다양한 감정의 편린을 불러 일으키는 시의 흔적들은 내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마다, 시집마다 다르다. 때로 어떤 시, 시집은 내게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어떤 시, 시집은 알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을 남긴채 사라져간다. 또 어떤 시, 시집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외에도 시들, 시집들은 내 몸속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간다.

 

 

<빛의 자격을 얻어>는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이 시집을 읽었다. 분명 이 시집의 시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시집의 시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게 남긴 흔적들을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딱 꼬집어서 뭐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의 시들.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시집의 시들을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 이 시집의 시들은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아름답다. 이 시들이 펼쳐내는 언어들이, 시인이 시를 쓰면서 형상화한 시의 언어들이, 내게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예술적 아름다움은 어쩌면 내 삶과는 상관이 없는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며 시적인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 말은 틀린 말 같다. 이 시들의 아름다움은 내 삶과 상관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피상적이지 않다. 이 시집의 아름다움은 시인이 창작활동의 고투를 통해 건져올린 시적인 현실의 산물이다. 시인이 구축한 시적 세계에서 이 시들은 충분히 시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이다. 시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시적 현실성을, 나는 시집을 읽는 독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 독서의 끝에서 내 현실과 시인이 구축한 시적인 현실은 만난다. 시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이 시적인 아름다움은 내 삶의 아름다움과 하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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