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리뷰

 

이런 것도 사랑인가?

-사요나라 사요나라 독서 노트 중에서

 

1.

읽고 나서 숨이 턱 막혔다.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오는 상태도 아닌,

슬퍼서 울음이 나오는 상태가 아닌,

감동해서 몸에 찌르르  전기가 오는 상태도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역시 이번에도 사랑이 문제였다.

그놈의 사랑. 빌어먹을 사랑.

너무나 아파서 발작을 불러일으키고,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먼저 죽을 사랑.

사랑 두 글자만 쓰다가 연필이 닿아버리는 사랑.

내가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사랑. 

왜 너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사랑하고 있는 사랑.

이런 사랑, 저런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다시 되돌릴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모든 것을 드러낼 수도,

같이 행복할 수도, 같이 한곳을 볼 수도 없는

그런 그들의 사랑의 노래.

 

어쩌자고 그들은 그 길로 들어서야 했던가?

그들은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헤매야 했던가?

그러니까 진짜

이런 것도 사랑인가?

 

사요나라 사요나라...

가나코이자 나쓰미이기도 한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환청처럼 들려온다.

 

2.

모든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와 그녀의 파멸의 전주곡이 울려 퍼진 것은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짓밟았다.

그들은 그녀를 유린했다.

그녀는 강간당했다.

 

그렇다. 그 순간

그와 그녀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이미 불행이 예고된 사랑이었다.

 

'나는 나를 용서해 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있는 게 아니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냥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린다.

 

3.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것도 사랑인가? 에 대한 대답은

이런 것도 사랑이다 이다.

 

그래, 이런 것도 사랑이다.

이런 것도 사랑이기에

사랑이 어렵다.

이런 것도 사랑이기에

사랑은 슬프고 힘들다.

 

그래도 사랑을 한번 불러본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사랑을 불러본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요시다 슈이치!!

이제 그의 소설을 빠짐 없이 읽을 꺼 같은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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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1.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자신의 마음 깊숙이 감춰진 비밀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비밀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밀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 비밀은 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비밀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도록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비밀은 무엇일까?

 

2.

'인간의 예감, 그것만큼 믿을 수 없는 것이

또 어디 있는가?'

 

헌신적이고 사랑스런 아내.

착하고 예쁜 딸.

 

그 모든 것을 가진

행복한 남자 헤이스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그의 행복은 한순간의 사고로

물거품같이 사라진다.

 

버스를 타고가던 아내와 딸이

버스와 함께 절벽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헤이스케.

 

아내와 딸 모두 혼수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헤이스케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시간이 흘러 아내를 읽고.

딸마저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던 순간

헤이스케의 딸은

기적적으로 눈을 뜬다.

 

그런데, 눈을 뜬 딸은

예전의 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잃고

어머니의 영혼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어머니의 영혼을 간직한 딸.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둘만의 비밀을 성립시킨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은 아내인가 딸인가'

 

자, 이제 아내이면서 딸인

여인과 헤이스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나는 아버지이면서 아버지가 아니다.

남편이면서 남편이 아니다.'

 

3.

<비밀>은 두 겹의 비밀을 간직한 소설이다.

 

첫번째 비밀은 바깥껍질을 형성하는 비밀로

주인공 두 명과 작가, 독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바로 딸 모나미의 육체에 아내인 나오코의

영혼이 깃들어다는 사실.

 

책은 이 첫번째 비밀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아내이자 딸인 여인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

비밀을 숨기기 위한 헤이스케와 그녀의 노력,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헤이스케의 고뇌,

딸이자 아내인 그녀와의 충돌,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한 질투

같은 사건들이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들을 덥친다.

 

그렇게 그들은 싸우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충돌하면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만든다.

평범한 이들은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

 

<비밀>은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물들의 삶도 중첩시킨다.

특히 피해를 일으킨 운전기사와 그들의 가족,

피해자 가족의 모습도 함께 묘사하며

그들만의 아픔이 아닌

다른 이들의 아픔도 표현한다.

 

버스 운전기사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와

그들 가족에게 남겨진 사회적 낙인,

피해자 가족 각자의 아픔,

사회가 그들 모두에게 보내는 시선의

문제.

 

그 모두가 합쳐저서 비밀이라는

소설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첫번째 비밀에 얽힌

이야기에 불과하다.

 

실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두번째 비밀이다.

 

첫번째 비밀에서 파생된

두번째 비밀은 바깥이 아닌 

중심에 위치한 비밀로

마지막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비밀이다.

 

독자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그 비밀앞에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느꼈다.

 

나오는 건 한숨뿐.

인생의 절망과 비애, 아픔이 함축된

그 비밀앞에서

나는 숨죽여 책을 덮어야 했다.

 

3.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시한번 나를 감탄시켰다.

정통적인 추리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섞은

인간 드라마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의 반전으로

나를 숨죽이게 했다.

 

앞으로도 그의 소설에

이와같은 감동과 반전이 있었으면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독자와 등장인물들도 알 수 없는

진짜 비밀스러운 반전을.

 

*영화 비밀의 이미지들



딸 모나미이자 어머니인 나오코 역할을 한

히로스에 료코.



그들의 행복한 순간.



거의 마지막에 가까운 장면.

아~~ 마지막만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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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1.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 많은 소년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학교라는 공간.

그곳은 신비의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비슷한 생활과 사고를 하는

동일화의 마법이 진행되는 곳.

동시에 그곳은 공포의 공간이다.

우리가 느꼈던 절망감, 슬픔, 아픔, 공포심이

뭉쳐서 무언의 공포를 형성하는 곳.

 

그래서였을까?

학교에는 유달리 괴담이 많다.

우리들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담은

우리의 공포가 형상화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가 괴담을 만들고

공포심을 먹고 자란 괴담이

우리를 잡아 먹는 곳이 학교이다.

 

<여섯번째 사요코>는 바로

이 학교 괴담에 관한 이야기이다.

 

2.

우리 학교의 어떤 '행사'는 게임과 비슷해요.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그러나 이 행사는 3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이루어지죠.

우리 학교의 행사에서는 게임의 '범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요코'라고 불러요.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하는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해요.


다음 '사요코'는 바로 전 '사요코'가 있었던

해의 졸업식 당일에 지명되요.

재학생이 졸업생에게 꽃다발을 건넬 때

어떤 메시지가 다음 '사요코'가

되어야 할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하더군요.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사요코'가 될 것을 승낙했다는 증거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자기 교실에 빨간 꽃을 꽂아요.

빨간 꽃이 꽂힌 순간부터 그 해의 게임은 시작되죠.

'사요코'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그것이

그 해가 '길할 징조'이고 그 해의 '사요코'가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졸업하던 해는 '여섯 번째 사요코의 해'라고 불려요.

그런데 그해는 유달리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많았죠.

 

<여섯번째 사요코>는 그 해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거에요. ^^

 

3.

여섯번째 사요코의 해에

사요코라는 여학생이 학교로 온다.

 

학교의 전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요코.

 

그녀의 등장은 이제 학교에

새로운 괴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낡은 학교에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그녀와 그녀 주변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사건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우리의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인걸까?

 

3.

예전에 친구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수능시험날이 유달리 추운 이유는

대학에 못 가고 죽은 귀신들의

한 때문이라고.

웃으며 한 이야기.

그러나 이것은 학교 괴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들은 아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전한다.

그런데 전하는 도중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이 붙고, 각색되고,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진짜로 무섭고 실제같은 괴담이 된다.

 

괴담의 생성.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공포심이 함께 만들어낸

일종의 창작물이다.

 

괴담을 만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학생들.

불안하고 미숙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그렇게 자신의 텅 비어버린 영혼을 괴담으로,

연애인에 대한 동경같은 것으로 위로하고 있다.

 

학생들이 만들어낸 사요코.

학교라는 공간이 자신의 틀을 계속 고수한다면

사요코는 언제나 돌아올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공포심을 먹으면서.

'돌아왔어.'

 

*전교생을 모아놓고 학생 한 명마다

공포스러운 연극의 한 구절을 읊게 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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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의 7일
미우라 시온 지음, 안윤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리뷰

1.

로맨스 소설 전문 번역가인 아카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연인 칸나는

서른 살의 나이에

자기 맘대로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사랑을 흔든다.

 

그녀의 아버지는

칸나를 못 미더워하고

그녀를 종 부리듯이 부리려 한다.

 

자주 가는 술집의 여종업원

마사미는 칸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거기다가 감당 못하는

여름날의 더위까지.

 

계속되는 혼란속에

아카리는 자기가 번역하고 있는

소설을 뒤바꾼다.

 

천편일률적인 선남선녀의

해피엔딩이었던 소설이

그녀의 개입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소설로 바뀐다.

 

멋지고 잘생긴 주인공은

갑자기 칼을 맞아 죽고

'저질러버렸다. 드디어 워릭을 죽이고 말았다.'

조연에 불과한 남자 주인공의 친구는

주연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산도스의 활약이 있으면 좋을텐데.'

수동적이고 힘없는

캐릭터였던 여자 주인공은

위기를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나는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이라고.'

 

<로맨스 소설의 7일>은

이렇게 그와 그녀의 사랑,

로맨스 소설의 내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7일동안 기록한 소설이다.

 

2.

사랑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사랑에는 삶의 굴곡이 있다.

현실 속의 사랑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예기치 못한 행동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은

반드시 잘생긴 인물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은 만인이 향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다.

'로맨스 소설은 전부 판타지다.'

 

<로맨스 소설의 7일>은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의 천편일률성을

탈피할려고 아예 로맨스 소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소설과 현실의 사랑을

비교하면서 소설의 환상성과

현실의 일상성을 섞고 있다.

 

힘들고, 아파하는 것도 사랑임을

환상의 목소리가 아닌

현실과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 소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환상이다.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변해버린

아카리가 창작한 로맨스 소설도 환상이고,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따듯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아카리와 칸나의 사랑도 픽션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라면,

이런 로맨스라면,

환상의 날개를 벗어버린

일상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랑이라면

우리가 꿈꾸고 해 볼수 있지 않을까?

 

3.

로맨스 소설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우리만의 로맨스 소설이 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울고,웃고,힘들어하는

사랑의 삶이 우리를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을 마음껏 할 필요가 있다.

그 혹은 그녀가 떠났다면

마음껏 슬퍼하고 괴로워하라.

 

그러나 그 상처가, 그 경험이

다음번에 펼쳐질

당신만의 로맨스 소설을 더욱 윤택하게 하리라.

 

그렇게 우리의 로맨스 소설은

더욱 풍성해지고, 알차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

열심히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기를

오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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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리뷰

1.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에서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이야기는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인간이 유전자의 욕망에 종속된

도구라는 발상은

인문학적 사고,진보,감성,예술같은 것들이

인간 생존 욕구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나의 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허울좋은 위선을

걷어내는 시원한 폭로였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단지 유전자 생존의

노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여기 이렇게 글을 쓰는 내가

단지 번식과 생존의 욕구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존재인가?

 

인간의 모든 것을 유전자로 환원하는

도킨스식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삶 1초1초를

빈틈없이 규명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정도에 불과한가?

 

이사카 코타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중력 삐에로>에서

'그것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2.

<중력 삐에로>는 인간 사회의

중력에 도전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인간을 날지 못하게 얽어매는 중력.

그것은 인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중력은

유전자였다.

 

도킨스가 말한 대로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초강력 블랙홀인 유전자.

그 유전자라는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세 남자의 몸부림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생을 아끼고 헌신하는 형 이즈미.

엄마의 강간사건으로 탄생한

피가 다른 동생 하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자기의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응원하는 암 말기의 아버지.

 

이사카 코타로는

DNA라는 세 글자가 발생시키는

거대한 중력으로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즐겁고 상쾌한 문체로 유쾌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중력을 거부하는

하루라는 삐에로의 몸부림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

저렇게 하늘을 붕붕 나는

삐에로에게는 중력이 없어.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 건 없어지고 말야.'

 

3.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우리는 덧없고, 우리는 형성도중이며,

우리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완벽하거나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유전자의 욕구에 종속된

노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불완전하기에

유전자에 종속된 욕구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가능성을 형성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인간 세상의 모습이

어둡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믿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도킨스에게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4.

중력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 힘들다.

도중에 중력에 잡혀서

지상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삐에로의

몸부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삐에로는 항상

하늘을 보고, 하늘을 꿈꾸니까.

 

저기 하늘이 있고, 별이 있기에

삐에로는 오늘도 몸부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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