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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리뷰
1.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에서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이야기는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인간이 유전자의 욕망에 종속된
도구라는 발상은
인문학적 사고,진보,감성,예술같은 것들이
인간 생존 욕구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나의 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허울좋은 위선을
걷어내는 시원한 폭로였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단지 유전자 생존의
노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여기 이렇게 글을 쓰는 내가
단지 번식과 생존의 욕구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존재인가?
인간의 모든 것을 유전자로 환원하는
도킨스식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삶 1초1초를
빈틈없이 규명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정도에 불과한가?
이사카 코타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중력 삐에로>에서
'그것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2.
<중력 삐에로>는 인간 사회의
중력에 도전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인간을 날지 못하게 얽어매는 중력.
그것은 인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중력은
유전자였다.
도킨스가 말한 대로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초강력 블랙홀인 유전자.
그 유전자라는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세 남자의 몸부림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생을 아끼고 헌신하는 형 이즈미.
엄마의 강간사건으로 탄생한
피가 다른 동생 하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자기의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응원하는 암 말기의 아버지.
이사카 코타로는
DNA라는 세 글자가 발생시키는
거대한 중력으로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즐겁고 상쾌한 문체로 유쾌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중력을 거부하는
하루라는 삐에로의 몸부림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
저렇게 하늘을 붕붕 나는
삐에로에게는 중력이 없어.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 건 없어지고 말야.'
3.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우리는 덧없고, 우리는 형성도중이며,
우리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완벽하거나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유전자의 욕구에 종속된
노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불완전하기에
유전자에 종속된 욕구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가능성을 형성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인간 세상의 모습이
어둡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믿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도킨스에게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4.
중력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 힘들다.
도중에 중력에 잡혀서
지상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삐에로의
몸부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삐에로는 항상
하늘을 보고, 하늘을 꿈꾸니까.
저기 하늘이 있고, 별이 있기에
삐에로는 오늘도 몸부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