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이신주 외
1.
부끄럽다. 이 글을 쓴다고 해도 10월에 쓴 서평이 고작 세 편이라니. 받아들이는 입력에 비해서 나오는 출력은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 읽은 책을 꾸준히 서평으로 써내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나 알라딘 서재 이웃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게으름은 고칠 수 없는 수준인가라는 한탄을 할 수밖에 없다. 한탄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밖에 없으니 써본다.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2.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로 한국 장르문학의 풍향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처음에 내가 한국소설을 읽을 때는 SF 같은 장르문학은 문학계의 변방으로서, 문단에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 문학계의 현실을 여러차례 개탄해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평가에서나 나오는 양에 있어서나 한국 장르문학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이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특이점을 불러 일으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장르문학을 꾸준히 좋아해 온 내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좋다. 부담없이 다양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으니. 더 이상 박한 평가를 의식할 필요도 없고.
*다시 또 강조해보면, 내 개인적으로는 그 변화를 확연히 느낀 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였다.
3.
<제2회 문윤성 SF문학상 중단편 작품집>도 한국 장르문학의 변화된 흐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상작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로 보이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둘러보면, 한국 SF 작품들 중에서 기발한 설정이 있거나 플롯의 흥미는 있었지만 소설로서의 만듦새나 짜임새는 약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수상작들은 대체로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로서 느껴졌다. 아마도 심사위원들이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상작인 <내 뒤편의 북소리>도 그렇지만 우수상 수상작인 <궤적 잇기>, 가상작인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사어들의 세계>,<신의 소스코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궤적 잇기>,<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사어들의 세계>는 인간의 중요한 감정인 사랑, 우정, 고독을 SF의 형식으로 변주한 소설처럼 보였다. SF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감정이 핵심인 소설들. 그건 SF가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내 뒤편의 북소리>나 <신의 소스코드>는 내가 좋아하는 SF 특유의 기발한 설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대 서사의 흐름까지 가지고 있었서 좋았다. 특히 <신의 소스코드>는 같이 차원을 넘나드는 작품의 흐름을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기발한 형식에 담아내서 너무나 좋았다.
4.
위에 쓴 글을 보면 마치 내가 무슨 심사위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심사위원이 아니고, 일개 SF를 좋아하는 팬일 뿐이다. 팬심으로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했을 뿐이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국 SF의 좋은 흐름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적었을 뿐이다. 적고 보니 내가 여전히 심사위원인 줄 착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나는 조금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 조금 더 정신을 차린 채 책 읽고 글을 써보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