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마음 - 지치지 않고 세상에 말 걸기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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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뾰족한 마음-위근우

*10-210월달에 두번째로 쓰는 서평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치가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위치는 상황과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지죠. 누군가는 어떤 이의 아버지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의 자식이 되고, 그들이 같은 직장에서 상사가 되거나 부하직원이 되는 것처럼. 대중문화를 대하는 이들의 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단순한 대중문화 소비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대중문화 생산자가 되고, 또 다른 이는 대중문화를 비평하는 비평가가 되기도 합니다. <뾰족한 마음>의 저자 위근우는 대중문화 비평가입니다. 대중문화 비평가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평범한 대중문화 소비자와 위근우의 위치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책 제목을 보면 느껴지는 것처럼, 위근우는 대중문화를 대할 때 뾰족한 마음을 내세우기에, 그의 대중문화를 보는 시선은 날카롭지 그지없습니다. 글을 들여다보는 평범한 대중문화 소비자의 마음을 벨 것처럼.

 

어떻게 보면, 뾰족함 마음을 가지고 대중문화를 들여다보며 날카롭게 파악하는 것을, 평범한 대중문화 소비자가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컨텐츠를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피면서 작품이 가진 이데올로기나 개념, 작품이 생산되어 소비되는 사회적 양태를 파악하면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작품의 용법을 파악하는 걸, 삶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피곤한 현대인들은 대중문화 컨텐츠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쉬운 일이죠.

 

현대의 대중문화 소비자들과 비평가들의 차이가 메워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오히려 대중문화 비평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그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다수는 지친 심신을 이끌고 쉬기 위해 대중문화 컨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게 이 사회의 구조라면, 소수의 누군가는 그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 컨텐츠를 꼼꼼하게 살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죠. 쉽게 소비되는 대중문화 컨텐츠의 관성을 비판하고, 그것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이나 개념의 폭력성을 성찰하고, 새롭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거나 컨텐츠 창작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식으로. 다수가 할 수 없는 걸 하는 소수, 다수의 삶의 방식을 어떤 식으로든 보완해주는 소수. 제가 보기에 대중문화 비평가의 몫은 거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위근우씨의 몫도 거기에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위근우씨가 <뾰족한 마음>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은 크게 공감하지만, 어떤 부분은 비판합니다. 독서모임 같은데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가치판단으로 보는 건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하기 때문에 그들의 몫을 인정하지만, 반대로 보면 내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위근우 같은 대중문화 비평가들은 저게 잘못됐다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다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저같은 대중문화 소비자들을 채찍질하고 채근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대중문화 소비자인 저는, 학교 선생님 같은 그들의 간섭에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저만의 뾰족한 마음을 가다듬어 나갑니다. 그렇게 저같은 이들의 뾰족한 마음과 위근우 같은 비평가들의 뾰족한 마음이 합쳐져서 하나의 사회가 이루어지는 거겠죠. 물론 둘의 뾰족한 마음이 합쳐질 때 나타나는 양사이 긍적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들이 언젠가는 합쳐지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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