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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 -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현대 미술 읽기
이문정 지음 / 현암사 / 2022년 6월
평점 :
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이문정
단언해서 말할께요. 저는 현대미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제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관해서 과거의 추억이 있습니다. 한 때 저에게는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러브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인물은 미술관 관람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인물을 따라 저는 용기를 내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를. 러브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을 그 전시회에서 저는 현대미술이라는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신세계를 경험하면서 저는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현대미술 이라는 신세계에 푹 빠져들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의 저는 현대미술을 좋아하고 있었겠죠. 첫문장에 적은대로, 저는 그 전시회를 통해 현대미술을 싫어하게 됐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전시물들과 퍼포먼스 사이를 걸어다니며 저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무지와 무식과 미지라는 단어들이 내리누르는 공포를 절감하면서. 러브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당장 뛰쳐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러브가 저를 살렸습니다. 그 감정은 참, 공포가 나를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전시회 관람은 좋았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고, 사랑했던 그 사람이 있어서. 반대로 전시회 자체에 대한 저의 인식만 봤을 때 저는 현대미술 전시회를 다시는 찾아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공포도 공포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관람하는 데 너무 돈을 많이 쓴 것 같아서요.^^;;
시간은 꿈결처럼 흘러갔습니다. 사랑했던 그 사람은 떠나갔고, 저는 저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현대미술을 좋아하지 않고, 현대미술 전시회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가봐요. 현대미술을 쉽게 이야기해주는 <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 같은 책을 제가 부담없이 읽고 있는 걸 보면. 미술평론가 출신의 저자 이문정 씨는 <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라는 책에서 현대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려운 용어나 개념의 없어서요. 미술평론이나 미술관련서에서 종종 보이는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없이 이문정 씨는 현대미술을 설명합니다. 친근함과 쉬언 말로서. 책이 술술술 익히는데 당황했습니다. ‘현대미술 책 맞아?’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현대미술 하면 생각나는 전문가주의나 엘리트주의 같은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이문정 씨가 설명하는 현대미술을 전체적으로 보니 ‘액체근대’라는 개념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는 용어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설명하는 바우만의 개념입니다. 바우만이 보기에 우리가는 살아가는 시대는 고정되고 딱딱한 시대가 아닙니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들이 과거의 고정되고 안정된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삶 속에서 살아간다고 바우만이 주장하며 그는 그걸 ‘액체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단어를 <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에서 저자인 이문정이 설명하는 현대미술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과거의 미술과 달리 단지 ‘보여주는’ 미술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은 관람자들의 참여를 유발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미술작품이 많습니다. 재료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캔버스라든지 물감 같은 몇 가지의 한정된 재료만 썼던 미술과 달리, 현대의 미술은 세상의 온갖 재료를 다 써서 만들어집니다. 변기, 동물시체, 똥, 깡통, 쓰레기... 그뿐만 아닙니다. 현대미술은 음악, 영화, 사진, 만화, 애니메이션, 춤, 공연, 건축 같은 온갖 다른 예술을 다 가져다 쓸 수도 있습니다. 미술관의 개념 자체도 달라집니다. 과거와 같은 미술관만이 현대 미술의 관람 장소는 아닙니다. 세상 모든 곳들을 현대 미술을 자신의 관람 장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과거의 단단하고 고정된 개념틀에 갖춰 있던 미술에 비해서 볼 때 현대미술은 훨씬 유동적이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술이 현대미술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현대미술이야마로 액체근대의 표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봅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현대미술에 대한 저의 비호감을 조금 무너뜨렸습니다. 진입장벽을 낮추었다고 해야할까요? 그래도 막상 현대미술 전시회에 갈래?라고 질문한다면 조금 머뭇거려지기는 하네요.^^;; 조금 더 알려고 노력한 뒤에 가보겠다는 비겁한 변명을 하며 이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