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이민자들-W.G.제발트

261.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2)

262.장르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듀나

263.미스터리 아레나-후카미 레이이치로

264.중간의 집-엘러리 퀸

265.잘자요 라흐마니노프-나카야마 시치리

266.러시아 기행-니코스 카잔차키스

267.아가씨와 밤-기욤 뮈소

268.안개-미겔 데 우나무노

269.철의 시대-존 쿳시

270.여자 없는 남자들-헤밍웨이

271.요괴를 빌려드립니다-하타케나카 메구미

272악보와 여행하는 남자-이시베 다쿠

273.염원-시즈쿠이 슈스케

274.아자젤-보리스 아쿠닌

275.네번째 피해자-천지무한

276.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미치오 슈스케

277.스켈리튼 키-미치오 슈스케

278.민트의 세계-듀나

279.전쟁은 끝났어요-곽재식 외

280.여자들의 등산일기-미나토 가나에

281.천사는 침묵했다-하인리히 뵐

282.남겨둘 시간이 없습니다-어슐러 K. 르귄

283.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장강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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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듀나

톡톡 튀는 상상력를 기반으로 SF를 쓰고, 영화관련 글을 쓰는 작가 듀나가 장르에 대해 이야기한 책. 듀나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장르를 정의하면서도 동시에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마치 건물을 지으면서도 다시 무너뜨리는 건축가처럼. 정의하면서도 정의를 무너뜨리는 듀나의 글쓰기를 읽다보니 내가 아는 장르의 정의에 대한 이미지가 '고체'가 아니라 '액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딱딱하고 고정된 장르의 정의가 흐물흐물거리는 액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 것처럼.

 

미스터리 아레나-후카미 레이이치로

TV쇼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추리를 통해 끊임없이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추리소설. 서바이벌 추리 프로그램 형식의 TV쇼에 출연한 출연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추리를 통해 쇼에서 제시하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하고, 연출자와 진행자는 그들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자신들의 비밀을 숨기려 하는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했던 다양한 트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한 트릭의 사례들을 TV쇼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그 트릭의 허점들을 다시 파훼하는 방식으로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풍자를 한다는 느낌의 이 소설은 결국은 본격 추리소설의 룰을 무너뜨리면서 막을 내린다. 리얼리즘이 퍼즐 미스터리에 침입하는 방식으로.

 

중간의 집-엘러리 퀸

<중간의 집>은 엘러리 퀸 2기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철저하게 퍼즐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르며 마지막에 '독자에의 도전'으로 독자들이 이 퍼즐 미스터리를 풀도록 촉구하고 영웅적이며 신적인 탐정이 수수께끼의 사건을 해결하는 엘러리 퀸 1기의 작품들과, 사건에 휘말려들어간 탐정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드라마에 침잠하여 스토리에 이끌려 다니는 엘러리 퀸 3기의 작품들 사이에 있는 이 작품은, 1기와 3기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의 특징과 강력한 스토리텔링과 인물들의 개성 강한 캐릭터가 모두 모아졌다고 해야할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둘 사이의 경계 지대에 머무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두 가지의 특징을 모두 가진 잡탕의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과 경계에 매력을 느끼는 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중간에 나오는 법정의 공방전은 더욱 더 재미를 배가하고.

 

잘 자요,라흐마니노프-나카야마 시치리

음악의 선율들을, 음악이 빚어내는 정서와 감동과 상황들을 언어로 풀어내는 소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일 수 있게, 그것도 독자가 충분히 감정이입 할 수 있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 소설은 얼마나 매력적일까. 기본적으로 나는 이런 소설들에 약하다. 책에 쓰여진 들리지 않는 음악들을 상상하는 것들이, 책 속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그 음악에 녹아드는지를 떠올리는 것들이, 나를 책에 빠져들게 하니까. 여기에 일본의 떠오르는 스토리텔러 나카야마 시치리가 설정해놓은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들이 더해진다면 이 책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 기행-니코스 카잔차키스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여행기. 그리스의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20년대 말에 세 번에 걸쳐 러시아를 여행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러시아의 현실을 목도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러시아의 현실을 보고 회의와 환멸을 느껴 러시아와 멀어진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에게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서구의 물질만능주의와 이성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밀고간 장소였다. 그는 이런 극단의 장소에서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여겼다.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으로 러시아를 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래서 그는 러시아에 대한 아주 강렬한 비판의 글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가능성을 담은 글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생명력을 갖춘 여행기를 <러시아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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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를 품에 안았을 때 빙카의 내면에서 또다시 그들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무언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매번 그랬듯 그녀는 이번에도 미래 따위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에게 사랑은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오직 이 순간만이 중요했다.

독을 품은 밤의 매혹.(18)

대체로 사람들이 변호사를 필요로 할 때가 바로 그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할 때이다.(63)

너도 이제 독해져라. 인생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넌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실존은 그 자체가 전투이다. 산다는 건 결국 지속적인 승리의 축적이다.'라고 한 글을 읽어봤을 거야.(185)

문명이란 불타는 혼돈 위를 살짝 덮고 있는 얇은 막에 불과해. 산다는 건 어차피 누구에게나 전쟁이라는 것을 잊지 마.(292)

나는 볼펜으로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평생 쓰는 일만 하는 셈이다. 벽을 세우면서 동이세 문을 연다는 뜻이다. 모든 걸 무차별적으로 쓸어버리는 잔인한 현실을 막아주는 벽, 현실과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는 세계로의 도주를 가능하게 해주는 문,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현실.

내 전략이 1백 퍼센트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허구가 현실보다 힘이 세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마 그 부분이 예술가와 소설가들의 특권이 아닌가 한다. 이따금씩 실재와 맞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395)

나는 언제나 오직 펜에 의지해 어둠을 가로질러 왔다.(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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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무기력하다.

몸안에 수분이 스며든 것처럼 나른하고 무언가 의욕이 안 생긴다.

그냥...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다고 해야하나.

무언가 집중하던 것에서 막상 빠져나오니 공허감이 큰 것 같다.

다음번 집중할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마 이런 상태가 지속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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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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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W.G.제발트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꺼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183)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들>은, 제발트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사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를 함에도, 분명히 허구의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자신이 '사실이다'라고 버젓이 주장합니다. 다양한 사실에 기반하고, 진짜 사실인 듯한 '사진'을 내세우면서. 따라서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책을 읽을 때에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읽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사실인듯한 허구,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헤메다 책밖의 현실로 나온 독자들에게, 이 허구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사실보다 더 깊숙하게 몸안에 현실의 모습들을 새겨지게 만듭니다. 사실 같은 허구의 이야기로 독자의 몸안에 깊은 현실성을 새겨넣은 힘. 저는 이것이 제발트 소설의 매력이자 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자들>도 제발트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고향이라는 뿌리에서 벗어나 낯선 땅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서글프고 가슴 먹먹하며 고뇌가 어린 삶을, 제발트는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한듯한 형식과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어조로 그리고 있습니다. 제발트에 의해 그들의 삶은 단순히 '이민자들'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된 보통명사적인 삶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는, 보통명사와 일반화로 규정된 삶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이고 개체성을 지닌 고유명사적인 삶이 됩니다. 다른이들과 같은 삶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 그 독자적이고 고유한 삶의 형상들을 읽어갈수록 독자인 우리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거나 동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에 등장한 독자적인 이민자들의 삶은 우리의 독서 체험을 통해서 다시 우리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보통명사화 됩니다. 각 개인의 삶에서 우리 모두를 포괄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고유명사화된 삶이 다시 보통명사화된 삶이 되는 과정으로서의 독서. 하지만 이 때의 과정은 앞의 과정과는 다릅니다. 책을 읽는 독자인 우리가 그들의 삶을 생생히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그들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제발트 소설이 일깨워주는 삶의 진실 앞에서 저는 그래서 제발트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제발트 소설의 힘이겠죠. 여기서 저는 더 파고들어가 봅니다. 제발트 소설의 힘이라는 게, 어쩌면 강력한 윤리성을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입으로만 옳고 그르니를 떠드는 형식적인 윤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한 개인의 삶의 형상을 보여주는 체험을 통해, 개인의 삶에 공감하면서 형성되는 '그 무엇'이 진짜 강력한 윤리가 아닐까? 단순히 한 문장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공감하게 만드는 '공감의 윤리'야말로 진정 강력한 윤리가 아닐까? 저는 그게 소설이 할 수 있는,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발트의 소설은 소설과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윤리에 가닿아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제발트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그 최대한의 윤리에 가닿으면서 생겨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민자들>을 읽다가 이 정도까지 생각이 나네요. 나중에 혹시 제발트 소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더 파고들어가서 생각을 보충하여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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