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듀나

톡톡 튀는 상상력를 기반으로 SF를 쓰고, 영화관련 글을 쓰는 작가 듀나가 장르에 대해 이야기한 책. 듀나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장르를 정의하면서도 동시에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마치 건물을 지으면서도 다시 무너뜨리는 건축가처럼. 정의하면서도 정의를 무너뜨리는 듀나의 글쓰기를 읽다보니 내가 아는 장르의 정의에 대한 이미지가 '고체'가 아니라 '액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딱딱하고 고정된 장르의 정의가 흐물흐물거리는 액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 것처럼.

 

미스터리 아레나-후카미 레이이치로

TV쇼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추리를 통해 끊임없이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추리소설. 서바이벌 추리 프로그램 형식의 TV쇼에 출연한 출연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추리를 통해 쇼에서 제시하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하고, 연출자와 진행자는 그들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자신들의 비밀을 숨기려 하는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했던 다양한 트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본격 추리소설에 등장한 트릭의 사례들을 TV쇼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그 트릭의 허점들을 다시 파훼하는 방식으로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풍자를 한다는 느낌의 이 소설은 결국은 본격 추리소설의 룰을 무너뜨리면서 막을 내린다. 리얼리즘이 퍼즐 미스터리에 침입하는 방식으로.

 

중간의 집-엘러리 퀸

<중간의 집>은 엘러리 퀸 2기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철저하게 퍼즐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르며 마지막에 '독자에의 도전'으로 독자들이 이 퍼즐 미스터리를 풀도록 촉구하고 영웅적이며 신적인 탐정이 수수께끼의 사건을 해결하는 엘러리 퀸 1기의 작품들과, 사건에 휘말려들어간 탐정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드라마에 침잠하여 스토리에 이끌려 다니는 엘러리 퀸 3기의 작품들 사이에 있는 이 작품은, 1기와 3기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의 특징과 강력한 스토리텔링과 인물들의 개성 강한 캐릭터가 모두 모아졌다고 해야할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둘 사이의 경계 지대에 머무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두 가지의 특징을 모두 가진 잡탕의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과 경계에 매력을 느끼는 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중간에 나오는 법정의 공방전은 더욱 더 재미를 배가하고.

 

잘 자요,라흐마니노프-나카야마 시치리

음악의 선율들을, 음악이 빚어내는 정서와 감동과 상황들을 언어로 풀어내는 소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일 수 있게, 그것도 독자가 충분히 감정이입 할 수 있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 소설은 얼마나 매력적일까. 기본적으로 나는 이런 소설들에 약하다. 책에 쓰여진 들리지 않는 음악들을 상상하는 것들이, 책 속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그 음악에 녹아드는지를 떠올리는 것들이, 나를 책에 빠져들게 하니까. 여기에 일본의 떠오르는 스토리텔러 나카야마 시치리가 설정해놓은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들이 더해진다면 이 책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 기행-니코스 카잔차키스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여행기. 그리스의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20년대 말에 세 번에 걸쳐 러시아를 여행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러시아의 현실을 목도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러시아의 현실을 보고 회의와 환멸을 느껴 러시아와 멀어진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에게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서구의 물질만능주의와 이성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밀고간 장소였다. 그는 이런 극단의 장소에서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여겼다.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으로 러시아를 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래서 그는 러시아에 대한 아주 강렬한 비판의 글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가능성을 담은 글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생명력을 갖춘 여행기를 <러시아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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