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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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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7.오벨리스크의 문-N. K. 제미신

어쨌든 사람이란 자기 자신과 남들로 구성된다. 하나의 존재를 최종적인 형태로 빚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9)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추상적인 질문 같지만, 판타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해보자면, 우선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장르 문학으로 대표되는 대중 문학 장르란 모름지기,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으려면 읽기 어렵기 보다는 읽기 쉬워야 할 것이며, 스토리텔리의 힘이 강력해야 할 겁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텔링으로는 재미를 주기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낯선 세계의 환상적이고 낯선 모험을 주로 그리는 판타지 소설이 재밌으려면 읽기 쉽고 이야기의 힘이 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판타지 소설의 또다른 요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세계의 리얼함입니다. 어찌보면 이게 이상한 말인데, 왜냐하면 판타지 소설 속 세계는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이고, 그것은 환상적이고 낭만적일 따름이지 현실의 입장에서는 리얼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적이고 이상한 세계라 해도, 그 나름의 리얼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생생함과 질감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소설을 읽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 환상적 세계의 리얼함은 좋은 판타지 소설에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판타지 소설이라 해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현실감이 떨어지며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 지는 겁니다.

쉽고 재미있으며 나름의 리얼함을 갖추고 있으면 좋은 판타지 소설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요? 쉽지 않은 일이죠. 쉽지 않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가들은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벨리스크의 문>은 그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의 두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처럼,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고요 대륙'의 생생한 현실감을 구현해내려는 작가의 몸부림이 느껴집니다. 마법에 가까운 '조산술'을 쓰는 종족인 '오로진'에 대한 일반인들의 차별과 증오심(여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저자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체 불명의 존재인 스톤이터들과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보, 오로진을 제어하려는 수호자들의 행동과 폭력성, 저마다 각자의 생각과 이기심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전투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전 문명의 흔적들과 그것들을 움직이려는 시도까지. 이 작품은 역동적인 스토리텔링에 그것을 도와주는 판타지 세계의 생생함을 곁들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가상의 세계인 고요 대륙 특유의 단어나 말투,개념,사고,생각,가치관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분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세계의 환경,정치적 현실, 역사,사회문화적 맥락, 삶의 방식이 너무 이질적이고, 다른 면모가 있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다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동적인 스토리텔링, 가상 세계의 현실감을 간직한 인물들의 생명력과 투쟁, 마법과 환상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소설. 이 정도면 판타지 소설에 뭐를 더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력한 건 '애정'입니다.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니라 가족 간의 애정. 소설의 이야기를 감싼 휘황찬란한 요소들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어머니가 딸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전편인 1편 <다섯 번째 계절>은 주인공인 에쑨이 남편의 폭력으로 아들을 잃고, 남편이 딸마저 데리고 떠나버리면서 딸을 찾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 에쑨 자신의 과거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경위, 자신의 힘을 자각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시간을 교차시키며 전개됐던 1편에 비해 2편인 <오벨리스크의 문>은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1편의 모험 끝에 지하향 카스트리마(지하도시로 봐도 됩니다.^^)에 정착한 에쑨이 거기에 머물고 있던 과거의 스승이자 애인인 인물을 만나 힘을 더 키우고, 카스트리마에 닥친 위기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에쑨이 찾는 대상인 딸 나쑨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오로진으로 인해 나쁜 일을 겪고 오로진에 대한 트라우마와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에쑨의 남편 지자는, 아들의 정체를 알고 홧김에 때려죽었다 정신을 차리고 딸 나쑨을 데리고 마을을 빠져나와 방랑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에쑨을 통제했던 과거가 있으며, 에쑨과 뗄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을 가진 수호자 샤파를 만납니다. 샤파는 다른 수호자들과 같이 어린 오로진들을 데리고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거기에 둘을 받아들입니다. 어머니 에쑨을 따라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나쑨을 아낀 샤파는 아이를 딸처럼 아끼고, 아버지가 본질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쑨은 샤파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르며 그의 편에 서게 됩니다. 오로진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그들을 자유롭게 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에쑨과 수호자의 편에 서서 오로진들을 통제하고 말을 안 들으면 죽일 생각까지 있는 나쑨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겠죠. 아마도 둘의 대결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할 수 있는 3편에 가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가리고 있는 휘황찬란한 것들을 거두고 나면 보이는 건 애정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 관계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이 이 소설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오로진에 대한로 증오로 인해 딸을 사랑할 수 없는 아버지, 그 아버지 때문에 나쑨은 사랑을 갈망하다 좌절하고, 수호자의 본성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을 아끼는 샤파를 만나 그를 진짜 아버지로 여기게 됩니다. 나쑨은 샤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머니와 반대편에 서는 것이죠. 에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자가 자기가 사랑할 수 없는 인물인 걸 알고 좌절하고, 카스트리마에 가서 재회한 옛 스승을 통해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는 에쑨도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기댈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둘의 능력과 폭력이 발화하는 지점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건, 어긋난 애정에 대한 좌절감과 진실한 애정에 대한 갈망입니다. 사실 이건 판타지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야기나 문학이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극적인 사건을 구성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감정 중 하나인 애정을 잘 사용하니까요. 그게 다 우리가 다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무릇 인간의 감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판타지 소설도 화려하고 환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결국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이야기인 셈이다. 환상으로 부풀려졌지면 들여다보면 다 똑같은 인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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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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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6.스캐너 다클리-필립 K. 딕

"아직 당신 친구야."

도나는 격하게 대꾸했다. "부서진 잔해일 뿐이야."(411)

필립 K. 딕 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저도 영화를 생각하면서 그의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뭔가 다른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느낌이랑 너무 다른 면이 있어서요. 각 영화마다 분위기가 다른 점이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동안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영화들이 SF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시각효과에 중점을 두는 것에 비해, 필립 K. 딕의 소설들은 스토리텔링 보다 작가의 스타일에 더 집중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대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에다, 대화 속에 묵직하고 의미있는 철학적인 주제들이 들어가 있고, 환상과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그만의 스타일.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게 약물입니다. 약물 중독에 시달린 삶을 살았던 저자답게 그의 소설은 약물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실제적으로 약물이 책 속에 등장할 때도 있고, 약물이 나오지 않아도 약물의 느낌이 나는 식으로. 다른 말로 딕의 SF는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강합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스캐너 다클리>는 딕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약물에 천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책을 펼치면 처음에 나오는 '등장 약물 소개'부터 이미 이 책의 약물 포스는 장난이 아닙니다. 약물을 다루는 단어들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책에서 약물은 알파이자 오메가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약물 못지않게 책을 강하게 뒤덮고 있는 건 딕의 스타일입니다. 인물 간의 대화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철학적이고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와 어구들, 이게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불안과 불확실함의 반영 같은 딕의 스타일은 이 소설을 딕만이 쓸 수 있는 소설로 만듭니다. 실제 약물 중독과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재활 치료의 경험을 반영한 이 소설은, 그렇게 약물 소설이자 딕의 소설이 됩니다.

제가 이 소설에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소설이 성장소설의이 '거울상' 같다는 점입니다. 성장소설이 뒤집힌 형태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어떤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의 반대입니다. 소설의 처음에, 주인공인 비밀 요원 프레드는 소설에서 가장 멀쩡한 상태로 등장합니다. 그는 경찰이지만, 밥 아크터라는 가명으로 마약상을 하며 신종 마약 'D물질'의 공급원을 뒤쫓고 있습니다. 일종의 잠입요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죠. 약물중독이 일상화되어 있고, 약을 공급하는 이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만의 최선을 다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D물질'을 수시로 접하며 약물중독자가 됩니다. 상부의 명령으로 그는 상부가 주목하는 이의 삶을 상부가 몰래 설치한 홀로스캐너로 관찰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상부에서 그에게 관찰하라고 명령한 이가 바로 '밥 아크터'라는 점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홀로스캐너로 관찰하고 보고해야 합니다.자신을 관찰하면서 그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진짜 자신은 약물중독으로 삶이 파괴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이 소설은 그 과정을 통해 멀쩡한 인물이 약물 중독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가장 정상적이고 멀쩡한 상태에서 시작한 그의 모습은 책을 넘기면 넘길수록 파괴되어 갑니다. 인지 능력이 약화되는 것부터 해서 뇌가 서서히 무너져가다가 자기 자신을 잃는 식으로. 가장 좋은 상태에서 가장 최악의 상태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소설의 형식은 '성장소설'의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몰락의 소설이자 약물 중독으로 인한 자아상실을 보여주는 소설.

약물 중독을 통한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 소설이 오직 약물중독에 매달린 약물 소설인 것만은 아닙니다. 소설은 프레드의 경찰 동료로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프레드의 약물 중독을 방관한 이가 프레드의 몰락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를 돕기 위해 나서는 것도 보여줍니다. 그 사람을 통해 프레드가 있는 치료소에 가서 프레드를 돕는 다른 요원의 모습도 있죠. 대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묵직하고 철학적인 고찰이나 무게감 있는 문장들은 이 소설을 오직 약물의 굴레에만 매이지 않게 해줍니다. 약물을 떠나서, 저는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이 소설에 존재하는 이상한 따스함을 감지해냅니다. 비록 약물로 인해 파괴됐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꿈꾸는 따스함. 아마도 그건, 약물중독으로 인한 고생하던 작가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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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타워 6 - 수재나의 노래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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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5.다크타워6:수재나의 노래-스티븐 킹

보라, 거북이의 거대한 몸통을!

등딱지에 지고 있네 이 대지를.

머리는 느려도 항상 친절해,

모두를 품고 있어 그 마음 속에.(35)

미국을 대표하는 공포소설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대표작은 무엇일까요? 영화로도 유명한 <미저리>,<그린마일>,<샤이닝>일까요? 스티븐 킹의 대표 중편집이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의 원작인 <쇼생크 탈출>이 포함된 '사계'일까요? 최근에야 영화가 나온 <그것>? 6권이라는 긴 분량의 현대판 묵시록 같은 <스탠드>?

이 작품들 모두 훌륭한 작품이지만, 스티븐 킹의 대표작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분량으로 보나, 작품에 들여간 시간으로 보나, 미국에서의 지명도로 보나, '다크 타워' 시리즈가 스티븐 킹의 대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의 인터뷰나 자기 생각을 쓴 글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다크 타워' 시리즈를 자기의 대표작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다크 타워' 시리즈는 거의 지명도가 없습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영화로 너무 유명한 <쇼생크 탈출>이나 <미저리>, <샤이닝>, 최근에 영화가 나온 <그것>에 비한다면, '다크 타워' 시리즈는 한국인들에게 무명의 시리즈나 다름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로 '다크 타워'가 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7년도에 나온 영화는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이름값이 없습니다. 그나마 평가도 너무 좋지 않고요. 여기에 더해 서부 판타지라는 장르의 이질감이 큽니다. 서부 판타지? 네, 맞습니다. 스티븐 킹은 '반지의 제왕'과 서부영화인 '석양의 무법자'를 더해 서부 판타지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판타지 장르로서 '다크 타워' 시리즈를 구현해냅니다. 우리가 아는 중세 느낌의 기사, 마법사가 나와 괴물과 싸우는 판타지가 아니라 총잡이들이 나와서 서부 느낌의 공간에서 괴물들과 싸우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서부 판타지. 우리가 아는 판타지가 아니니 이질감이 클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다크 타워 시리즈가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1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즈의 첫 관문이자 포문을 여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1권은 읽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설정이나 기대감도 있지만, 20대 때의 치기가 어려 있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1권은 나중에 조금 고쳐 썼다고 해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너무 힘들게 읽어 다음권 읽기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읽은 게 아까워서 2편도 읽었는데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됐죠. 저의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다크타워 읽기를 시작했던 많은 이들이 1권의 벽에 막혀서 포기한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하지만요.^^

'다크 타워' 시리즈는 1권을 벗어나면 자기만의 재미를 펼쳐보입니다. 20세기 미국과 가상의 서부 세계를 위시한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펼쳐지는데, 그 모험담이 스티븐 킹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펼쳐지니 재미와 가독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6권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5권의 마지막에 이 시리즈의 초인적 영웅인 총잡이 롤랜드의 동료 수재나가 임신한 채로 사라지는데, 그녀를 찾기 위한 롤랜드의 그의 동료들이 6권에 그려집니다. 초반에 가상의 서부 판타지 세계에서 시작한 모험은 20세기 후반의 미국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의 모험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7권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6권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7권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한 건 작가인 스티븐 킹이 작품 세계 속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창조자가 피조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셈인데, 이건 20세기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인 문학기법에서 종종 쓰인 것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기존의 문학이 가진 리얼리즘적 경향을 해체하고, 문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장시키고 재창조 시키는데 기여한 기법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등장으로, 신선함과 새로운 재미가 더해집니다. 창조자가 피조물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 속 인물로서 등장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허구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역설로서. 또하나 생각해야 할 건, 작품을 만든 창조자가 작품에 등장한다는 것이, 작품의 창조자마저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한다는 점인데, 스티븐 킹은 비교적 이것을 잘 이행합니다. 창조자가 창조자가 아닌 작품 속 하나의 구조물로서 포함시키며 진행되는, 스티븐 킹의 실험적인 스토리텔링은 실제 있었던 일과 가상의 일을 뒤섞으며 '다크 타워' 시리즈를 앞에 말한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위치시키고 시리즈의 근원을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아마도 저자는,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7편을 앞두고 시리즈 자체의 근원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작가를 내세우며 시리즈가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방법으로 일깨우며. 그리고 책 속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면 스티븐 킹이 자신의 분신 같은 소설 속 '스티븐 킹'을 얼마나 철저하게 이야기 속 구조물로 활용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소설 속 '자신'마저 이야기를 위해 이용하며 시리즈의 마지막인 7편으로 나아갑니다.

다크타워 시리즈의 6편은 재밌습니다. 시리즈의 1편이 아닌 다른 편들처럼요. 그런데 이 재미는 조금 다른 재미입니다. 6편은 7편의 큰 싸움을 예고하고, 7편을 위한 작은 싸움들로(이런 말이 맞는 것일까요?^^)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7편을 위한 '새로운 탄생'을 작품 속에 위치시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영웅 총잡이 롤랜드의 최고의 적을 탄생시키는 식으로. 다크 타워를 둘러싼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험담의 끝을 준비하기에는 이런 방식이 옳은지도 모릅니다. 아직 등장하지 않는 큰 싸움을 위한 예비적인 것으로. 새로운 탄생은 새로운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생'과 '사'는 이어지니까요. 새로운 탄생을 담은 6편에 이어 7편은 거대한 싸움과 새로운 죽음으로 독자들을 인도할 겁니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시리즈의 독자들은 7편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읽어온 독자의 몫이니까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이들은 '다크 타워' 시리즈가 스티븐 킹 작품 세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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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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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4.한자와 나오키3-이케이도 준

"가만히 있지 않아.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거야."

한자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줘야지."(55)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읽으면 깨닫게 됩니다. 이 시리즈가 소설과 TV 시리즈 양 쪽에서 왜 성공을 거두었는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제 생각을 적는 저만의 서평이기에 꺼려 하지 않고 이에 대한 저만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엄청난 통쾌함을 줍니다. 네, 맞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에 딱 들어맞는 말은 통쾌함입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상사의 억압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회사가 아니라도 사회에서 '을'로서 '갑질'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키는 극단의 카타르시스가 불러일으키는 통쾌함.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이 통쾌함을 향해 미적대지 않고, 빠르고,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달려나갑니다. 통쾌함의 대행자로 나오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는 업무의 실패를 자신에게 다 뒤집어씌우려는 불량 상사를 향해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직언을 날립니다. 당한만큼 갚아주겠다고. 한자와 나오키의 직언 시리즈를 본 억압받은 회사원이나 사회인들은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교묘하고 철저한 준비로 인해 현실이 됩니다. 말뿐만 아니라 현실로 보여주기 때문에, 책이 전해주는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이 책은 극단의 속도감을 보여줍니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속도감, 가독성,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 때문에 두께랑 상관없이 책은 술술 잘 읽혀집니다. 책이 복합적이거나 중층적인 이야기 전개를 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쉬운 언어와 문체, 매력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들의 행동에다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일반통행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물론 미스터리의 요소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에 흥미를 더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속도감에 큰 힘이 되어줍니다.

셋째로, 이 시리즈는 재미있습니다. 사실 재미말고 엔테터인먼트 소설(일본에서 이런 류의 소설을 이렇게 부릅니다.)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위의 두 가지 요소에 더해 미스터리한 요소가 잘 더 해져 책의 재미를 절묘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리즈를 금융 미스터리나 기업 미스터리로 정의하기 보다는 기업 모험 소설이나 금융 모험소설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자와 나오키의 행동은 진짜 어드번체처럼 보이니까요.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 3편도 시리즈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통쾌하고 속도감 있고 재밌죠. 이 3편에 다른점이 있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과실을 맛본 베이비부머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 세대, 일본 경제의 정점을 경험했던 '버블 세대'와 달리, 1990년에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진 이후에 경제에 등장해 저성장과 취업빙하기의 현실을 경험했던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랑 달리 '생존'을 중시하고 조금 더 개인주의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그 현실을 반영하면서 3편은 IT 기업 간의 M&A를 둘러싼 경쟁과 음모, 대결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2편에서 상사의 무능력함과 부도덕함을 신랄하게 폭로했지만 그 때문에 은행의 자회사인 증권사로 좌천된 한자와 나오키는, 증권사를 음모로 내리누르고 IT 기업의 M&A를 진행시키려는 은행의 교활한 간부들에 맞서서, 그들보다 더한 계략과 음모를 전개시키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새대' 출신의 젊은 증권사 직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죠. 세대 간의 갈들을 지나치게 간단한 일반화로 해결하는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재미있기 때문에 책은 잘 흘러갑니다. 제가 일반화의 위험성이 감지됨에도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인맥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회사, 부조리함과 모순이 아니라 합리적인 운영으로 돌아가는 회사의 이상을 그리면서, 일본 사회에 갑질이나 부조리한 권위적 운영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좋은 회사에 대한 이상을 재미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좋은 회사에 대한 이상은 좋은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그려낸 3편에는 그런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죠. 재미있는데다 좋은 것에 대한 갈망까지 녹아 있는데 어찌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4편을 기대해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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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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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3.카메라를 보세요-커트 보니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모든 장면, 모든 대화가 서사를 전진시켜야 하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깜짝 결말이 있어야 하고.(12)

여름은 잠든 중에 평화롭게 사망했고, 상냥한 목소리의 유언 집행인 가을은 봄이 다시 찾으려 올 때까지 생명력을 금고 속에 잘 넣은 뒤 잠가두었다.(230)

'커트 보네거트'(이 책에서는 '커트 보니것'이라 번역했지만 저는 이전의 번역어인 '커트 보네거트'가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도록 하겠습니다.^^;;)는 제 마음의 '문학 속 제단'에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5도살장>,<갈라파고스>,<머더 나이트>,<고양이 요람>,<타이탄의 미녀>,<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같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전해진 페이소스, 신선한 설정, 기존의 소설들과 다른 구성,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감정의 흐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슬프지만 웃기고, 웃기지만 슬픈, 그러면서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해주는 커트 보네거트 소설의 힘 앞에서 '커트 보네거트'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이름을 새겼으니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이건 '사랑'과 유사할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를 사랑하는 제 앞에 커트 보네거트의 미발표 단편소설 모음집 <카메라를 보세요>가 나타났습니다. 읽지 않을 수가 없죠. 읽고 나니 '역시'라는 말이 제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역시'는 그 이전에 제가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을 때의 '역시'와 유사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거기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는 이전에 제가 읽었던 커트 보네거트와 소설들과 비슷합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강판 비판의식, 페이소스가 짙게 배어 있는 유머러스함까지.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우선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분량이 길어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장편소설과 달리 장편소설은 분량이 짧기 때문에 압축적이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강하게 독자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도 이 책에서 단편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짧으면서도 강하게 무언가를 전하면서, 그 안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내는 식으로. 어떤 동화같은 스타일로, 어떤 때는 SF적인 느낌으로, 어떤 때는 자기 특유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스타일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편소설을 쓰며 전체적으로 이 책의 분위기를 재밌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걸로 몰아갑니다.

결국은 작가가 중요한 거겠죠. 작가의 역량, 작가의 스타일, 작가의 문체, 작가의 구성 같은. 커트 보네거트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기에 재밌고 좋은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문학적인 우주에 끌여들어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저는 커트 보네거트라서 좋고 즐거웠습니다. 커트 보네거트가 간직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좋았고, 그러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게 좋았거든요. 무엇보다 가슴 따뜻함이 이 소설들 속에 살아 있어서 좋았습니다. 차디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에 내리는 따뜻한 단비같은 느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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