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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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7.오벨리스크의 문-N. K. 제미신

어쨌든 사람이란 자기 자신과 남들로 구성된다. 하나의 존재를 최종적인 형태로 빚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9)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추상적인 질문 같지만, 판타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해보자면, 우선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장르 문학으로 대표되는 대중 문학 장르란 모름지기,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으려면 읽기 어렵기 보다는 읽기 쉬워야 할 것이며, 스토리텔리의 힘이 강력해야 할 겁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텔링으로는 재미를 주기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낯선 세계의 환상적이고 낯선 모험을 주로 그리는 판타지 소설이 재밌으려면 읽기 쉽고 이야기의 힘이 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판타지 소설의 또다른 요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세계의 리얼함입니다. 어찌보면 이게 이상한 말인데, 왜냐하면 판타지 소설 속 세계는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이고, 그것은 환상적이고 낭만적일 따름이지 현실의 입장에서는 리얼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적이고 이상한 세계라 해도, 그 나름의 리얼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생생함과 질감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소설을 읽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 환상적 세계의 리얼함은 좋은 판타지 소설에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판타지 소설이라 해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현실감이 떨어지며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 지는 겁니다.

쉽고 재미있으며 나름의 리얼함을 갖추고 있으면 좋은 판타지 소설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요? 쉽지 않은 일이죠. 쉽지 않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가들은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벨리스크의 문>은 그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의 두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처럼,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고요 대륙'의 생생한 현실감을 구현해내려는 작가의 몸부림이 느껴집니다. 마법에 가까운 '조산술'을 쓰는 종족인 '오로진'에 대한 일반인들의 차별과 증오심(여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저자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체 불명의 존재인 스톤이터들과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보, 오로진을 제어하려는 수호자들의 행동과 폭력성, 저마다 각자의 생각과 이기심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전투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전 문명의 흔적들과 그것들을 움직이려는 시도까지. 이 작품은 역동적인 스토리텔링에 그것을 도와주는 판타지 세계의 생생함을 곁들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가상의 세계인 고요 대륙 특유의 단어나 말투,개념,사고,생각,가치관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분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세계의 환경,정치적 현실, 역사,사회문화적 맥락, 삶의 방식이 너무 이질적이고, 다른 면모가 있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다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동적인 스토리텔링, 가상 세계의 현실감을 간직한 인물들의 생명력과 투쟁, 마법과 환상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소설. 이 정도면 판타지 소설에 뭐를 더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력한 건 '애정'입니다.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니라 가족 간의 애정. 소설의 이야기를 감싼 휘황찬란한 요소들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어머니가 딸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전편인 1편 <다섯 번째 계절>은 주인공인 에쑨이 남편의 폭력으로 아들을 잃고, 남편이 딸마저 데리고 떠나버리면서 딸을 찾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 에쑨 자신의 과거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경위, 자신의 힘을 자각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시간을 교차시키며 전개됐던 1편에 비해 2편인 <오벨리스크의 문>은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1편의 모험 끝에 지하향 카스트리마(지하도시로 봐도 됩니다.^^)에 정착한 에쑨이 거기에 머물고 있던 과거의 스승이자 애인인 인물을 만나 힘을 더 키우고, 카스트리마에 닥친 위기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에쑨이 찾는 대상인 딸 나쑨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오로진으로 인해 나쁜 일을 겪고 오로진에 대한 트라우마와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에쑨의 남편 지자는, 아들의 정체를 알고 홧김에 때려죽었다 정신을 차리고 딸 나쑨을 데리고 마을을 빠져나와 방랑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에쑨을 통제했던 과거가 있으며, 에쑨과 뗄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을 가진 수호자 샤파를 만납니다. 샤파는 다른 수호자들과 같이 어린 오로진들을 데리고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거기에 둘을 받아들입니다. 어머니 에쑨을 따라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나쑨을 아낀 샤파는 아이를 딸처럼 아끼고, 아버지가 본질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쑨은 샤파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르며 그의 편에 서게 됩니다. 오로진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그들을 자유롭게 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에쑨과 수호자의 편에 서서 오로진들을 통제하고 말을 안 들으면 죽일 생각까지 있는 나쑨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겠죠. 아마도 둘의 대결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할 수 있는 3편에 가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가리고 있는 휘황찬란한 것들을 거두고 나면 보이는 건 애정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 관계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이 이 소설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오로진에 대한로 증오로 인해 딸을 사랑할 수 없는 아버지, 그 아버지 때문에 나쑨은 사랑을 갈망하다 좌절하고, 수호자의 본성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을 아끼는 샤파를 만나 그를 진짜 아버지로 여기게 됩니다. 나쑨은 샤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머니와 반대편에 서는 것이죠. 에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자가 자기가 사랑할 수 없는 인물인 걸 알고 좌절하고, 카스트리마에 가서 재회한 옛 스승을 통해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는 에쑨도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기댈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둘의 능력과 폭력이 발화하는 지점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건, 어긋난 애정에 대한 좌절감과 진실한 애정에 대한 갈망입니다. 사실 이건 판타지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야기나 문학이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극적인 사건을 구성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감정 중 하나인 애정을 잘 사용하니까요. 그게 다 우리가 다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무릇 인간의 감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판타지 소설도 화려하고 환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결국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이야기인 셈이다. 환상으로 부풀려졌지면 들여다보면 다 똑같은 인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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