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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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3.카메라를 보세요-커트 보니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모든 장면, 모든 대화가 서사를 전진시켜야 하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깜짝 결말이 있어야 하고.(12)

여름은 잠든 중에 평화롭게 사망했고, 상냥한 목소리의 유언 집행인 가을은 봄이 다시 찾으려 올 때까지 생명력을 금고 속에 잘 넣은 뒤 잠가두었다.(230)

'커트 보네거트'(이 책에서는 '커트 보니것'이라 번역했지만 저는 이전의 번역어인 '커트 보네거트'가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도록 하겠습니다.^^;;)는 제 마음의 '문학 속 제단'에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5도살장>,<갈라파고스>,<머더 나이트>,<고양이 요람>,<타이탄의 미녀>,<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같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전해진 페이소스, 신선한 설정, 기존의 소설들과 다른 구성,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감정의 흐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슬프지만 웃기고, 웃기지만 슬픈, 그러면서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해주는 커트 보네거트 소설의 힘 앞에서 '커트 보네거트'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이름을 새겼으니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이건 '사랑'과 유사할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를 사랑하는 제 앞에 커트 보네거트의 미발표 단편소설 모음집 <카메라를 보세요>가 나타났습니다. 읽지 않을 수가 없죠. 읽고 나니 '역시'라는 말이 제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역시'는 그 이전에 제가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을 때의 '역시'와 유사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거기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는 이전에 제가 읽었던 커트 보네거트와 소설들과 비슷합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강판 비판의식, 페이소스가 짙게 배어 있는 유머러스함까지.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우선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분량이 길어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장편소설과 달리 장편소설은 분량이 짧기 때문에 압축적이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강하게 독자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도 이 책에서 단편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짧으면서도 강하게 무언가를 전하면서, 그 안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내는 식으로. 어떤 동화같은 스타일로, 어떤 때는 SF적인 느낌으로, 어떤 때는 자기 특유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스타일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편소설을 쓰며 전체적으로 이 책의 분위기를 재밌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걸로 몰아갑니다.

결국은 작가가 중요한 거겠죠. 작가의 역량, 작가의 스타일, 작가의 문체, 작가의 구성 같은. 커트 보네거트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기에 재밌고 좋은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문학적인 우주에 끌여들어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저는 커트 보네거트라서 좋고 즐거웠습니다. 커트 보네거트가 간직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좋았고, 그러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게 좋았거든요. 무엇보다 가슴 따뜻함이 이 소설들 속에 살아 있어서 좋았습니다. 차디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에 내리는 따뜻한 단비같은 느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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