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에서는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제작비도 많이 든다는 데 이런 역사물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이 책 <한복 입은 남자>에서 받은 인상 중 하나가 이런 친숙함이다. 내가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이 책의 소재가 된 루벤스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서다.

이 책은 17세기 유명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내용은, 텔레비전 방송국의 PD인 진석이 이 그림을 보고서 그림 속 남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동안에 그림 속 남자의 후손이라는 이탈리아의 여자에게서 조상이 남긴 비망록을 얻고 그것을 친구의 도움을 받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가 장영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도 나왔지만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탈리아에 노예로 팔려 간 한국인으로,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탈리아에서 교육도 받고 로마에 거주했었단다.

처음에는 그림 속 남자가 장영실이라는 주장이 신선하기도 하면서도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을수록 그 주장에 동감하게 되었다. 주장에 대한 근거로 작가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이 왕의 가마 제작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궁궐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영영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며 장영실의 이탈리아로의 도피설을 펼친다. 또한, 조선시대에 발명된 비차와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스케치한 비행기의 설계도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과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회화나 발명품에서 동양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는 것도 주장한다. 그리고 그림 속 남자가 입은 옷이 임진왜란 후의 것이 아니고 조선 전기의 것이라는 설명과 장영실과 명나라 때 세계적인 원정 선단을 이끌었던 정화와의 친분 관계도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다.

이런 설정이 처음에는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것 같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것의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이 책이 소설책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역사책을 읽은 느낌이다. 이후에 장영실과 정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책의 힘이라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즐거웠던 것은, 한복 입은 남자의 복식을 설명하면서 오래 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던 변수라는 사람의 무덤 속 복식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그 전시회를 봤었기에 과거를 추억할 수 있어 좋았다. 이 덕분에 책과 교감한다는 느낌을 보다 짙게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책에서 내가 아는 지명이나 사건이 나올 때에도 들곤 했는데, 이 책은 주인공 진석이 돌아다니는 곳이나 등장인물 등 여러 면에서 내가 아는 것들이 나오기에 책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크게 들어 보다 흥미로웠다.

나는 근래 들어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 작가들의 탐구심과 상상력이야말로 세상을 즐겁고 윤택하게 해주는 힘이며 책이야말로 고도로 발달되었으면서 가장 저렴한 문명화된 생활도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똑같은 그림을 보았어도 작가의 관찰력과 탐구심, 상상력이 있었기에 이런 즐거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 어디에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이런 행복감을 다른 이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복을 찾기에 너무나 쉬운 방법은 바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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