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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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평론가 진회숙이 쓴 음악 에세이인 <클래식 오딧세이>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다. <클래식 오딧세이>에는 음악 작품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연관해서 보면 좋을 그림들도 여러 점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충격은 준 그림은 벨기에의 브뤠헤에 있는 흐로닝헤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는, 다비드가 그린 <캄뷰세스 왕의 재판>이다. 이 그림에 대한 소개에서 그녀는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 나온 설명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았다.

이 그림은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를 통치했던 캄뷰세스 왕이, 판결을 잘못했다는 죄로 시삼네스라는 판사에게 가했던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 장면을 묘사한 것이었다. 어떻게나 이런 끔찍한 장면을 그림으로 옮겼는지...서양 그림 중에는 끔찍한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 꽤 된다. 게다가 이 그림이 더욱 충격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살가죽을 벗기는 사람들이나 그 형벌을 받는 사람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는 점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클래식 오딧세이>에서 진회숙은 중세 음악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이 그림을 인용했다. 그 자세한 사항을 <클래식 오뎃세이>를 참고하시라.

어쨌든 이 설명글 덕분에 내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찾아 읽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의 독서 편력이자 영혼의 성장기록인 <소년의 눈물>을 읽은 감상에도 적어 놓았지만 그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그의 두 형의 우리나라에 유학하러 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는 사건을 겪는다. 이후 다행히도 형들은 무사히 출소하나 부모님들은 생을 달리한 다음이다.

이 책은 이 사건을 겪은 뒤 그가 33세가 되던 해인 1983년 말에 누나와 함께 서양의 미술관을 둘러본 뒤에 적은 글에서 시작된다.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중 10편이 첫 여행 후에 쓰인 것이고,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서양 미술관을 다녀오는데, 8장에 실린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는 1985년 말에 있었던 두 번째 여행 후에 적은 글이다.

이처럼 이 책은 미술 전문가의 가이드북이 아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평범한 감상자로서의 감상도 담지 않았다. 그는 아주 복잡한 심경에서 그림들을 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지 못했을 더 많은 것들을 그림에서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작품보다는 독특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들에 집중했다. 그런 만큼 색다른 미술 감상법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더불어 ‘양심수’라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치 상황에서 빚어진 아픔에도 직면하게 된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그림과 역사를 함께 보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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