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 「오정희」 - 중국인 거리, 완구점 여인, 저녁의 게임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8
오정희 지음, 신두원 엮음, 이경하 그림 / 사피엔스21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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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여름방학과제 도서라서 같이 읽어 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이야기의 배경이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이었다. 지금이야 물론 차이나타운이라 불리지만 그때는 중국인거리라고 불렸었나 보다.

오정희라는 작가도 생소했다. 약력을 보니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화려한 이력의 작가였는데, 이름마저도 금시초문이었으니 내가 얼마나 문학에 대해 문외한이었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씁쓸함을 주기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앉은 자리에서도 금방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무거웠다.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매기 언니, 할머니, 제니, 건너편 이층집의 중국인 남자 등의 삶이 순탄치 않은 탓이기도 하다.

열두 살 소녀인 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피난지로부터 항구도시의 외곽에 있는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이야기 첫머리부터 이야기의 배경이 인천역과 차이나타운 부근이 아닐까, 그리고 주인공의 식구들이 사는 적산가옥이 중구청 부근이 아닐까 짐작하면서 또 우리나라에 중국인 거리가 있는 곳이 어딜까 열심히 머리 굴리면서 봤는데, 이야기 중간쯤에 자유공원과 맥아더 장군 동상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에 이 글의 공간적 배경이 확실히 인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인천이기에 더욱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이 아픈 내용들이 많았다. 6.25전쟁 때 흑인의 아내가 된 매기, 매기가 그 이전에 백인 남성 사이에서 낳은 딸 제니, 여동생에게 남편을 빼앗긴 뒤 평생 홀로 산 주인공의 할머니, 양부모에게 얹혀 있는 주인공의 친구 치옥이, 적산가옥에 사는 한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이층집의 중국인 젊은 남자까지... 6.25전쟁 직후라는, 그래서 결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이들의 삶은 더욱 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과 낯선 모습의 중국식 적산 가옥, 그리고 기지촌과 미군 부대로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전후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이 거리에서 한 소녀가 여러 사람들의 우울한 삶을 목격하면서 초경을 치르는 시간까지 겪었던 성장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부모 세대 또는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다. 그 분들의 이런 유년시절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어른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힘든 통과의례를 겪게 마련이다. 세상의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면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따질 수 있을 때에 어른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 시절을 보낸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는 “니네, 이런 삶도 아니? 우리는 이런 아픈 시간을 겪고 어른이 되었단다. 그런 만큼 너희도 진짜 어른이 되려면 다양한 삶을 보려고 애쓰렴”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지금 현재 그 당시의 우울했던 중국인 거리는 멋지게 꾸며지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중국 음식점들이 즐비하며 이름도 차이나타운으로 바뀌었다. 이 거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곳이든 우리 윗세대의 애환이 어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바탕 위에 오늘날 우리의 평안한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감사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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