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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 그 진위야 어쨌든, 모차르트가 진혼곡을 작곡한 뒤에 죽었다느니, 듣기만 하면 사람이 죽는 악마의 노래가 있다느니 하기에 이 책의 제목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뒷맛이 깔끔하지 않았다. 추리소설 치고 뒷맛이 개운한 것은 없긴 하다. 사람이 처참하게 죽는 것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읽은 뒤에 기분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다 이 책은 근친상간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더욱 우울하다. 어찌 그런 인면수심의 인간들이 있을까?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히기는 한다.
일본에도 귀족이 있던 시절이 있었단다. 메이지 유신 뒤 공신들에게 귀족 작위를 주었었는데, 그들을 특별히 화족이라 불렀단다. 이 화족 중 한 명이었던 츠바키 자작이 천은당이라는 보석상에 침입해 10명의 사람들을 독살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혐의를 벗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뒤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의심을 품지 않는데, 이후 그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그가 살아생전에 즐겨 불렀던 ‘악마가 와서 파리를 분다’는 제목의 플루트곡이 연주된 뒤에 사람이 죽는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결국에는 요코마조 세이시가 창조해낸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으로 사건의 추악한 전모가 밝혀진다.
코난 도일에게는 셜록 홈즈가 있고, 아가사 크리스티에게는 에르큘 포와로가 있듯이, 요코마조 세이시에게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있다. 그러나 긴다이치 코스케는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처럼 놀라운 추리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거의 책 말미쯤에서 사건 현장을 재현할 때 쯤에 진가를 드러낼 뿐이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힘들게 하면서 끝에 이르게 된다.
탐정이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해 가는지 그 귀추를 가슴 조이면서 읽어가는 것이 추리 소설의 묘미이며, 이 책 역시도 그런 묘미를 갖고 있지만,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등장인물들의 추악한 과거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리 유쾌하게는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 요코마조 세이시를 알게 되는 수확을 얻었다.
나는 일본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어 보지는 못했다. 근래에 들어서 열심히 읽고 있는데, 그 분야도 주로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알게 된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나토 가나에, 미야베 마유키 등이다. 이번에 알게 된 요코마조 세이시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초창기 작가이다. 그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선구자인 에도가와 란포의권유로 출판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전업작가가 되었다. 그는 유명한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 덕에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란 책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사건을 의뢰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자살의도를 암시하는 것으로 준 것인데, 후에야 그 의미가 드러난다.
사람이 맑고 투명하게 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당당하게 말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하늘이 진노하고 땅이 무섭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한 번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이 휘돌아 나가면서 잠시 방향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제 본래 길로 가듯이, 세상 또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란 것이 나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