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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작가 현기영의 작품이다. 그의 책을 별로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가 제주도 태생이며 제주도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적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예전에 MBC에서 했던 독서 권장 프로그램인 ‘느낌표’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부끄럽게도 그 책 또한 읽어보지 못했다.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우리 현대사를 바로보자는 취지에서인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많이 읽힌다. 내가 읽은 이 책에는 ‘순이 삼촌’을 포함해 그가 쓴 10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이 중 ‘순이 삼촌’은 앞서도 말했지만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제주 4.3사건이라는 말 자체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몰랐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그 사건을 조사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문학이 우리에게 해주는 사회적인 역할이리라.
제주 4.3사건은 광복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다. '4.3특별법'에서는 제주 4.3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가슴 아픈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다. 이때 무고한 제주도민 중 다수가 죽고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는다. 다행히 그때 순이 삼촌은 목숨은 건졌지만 마음속에 크나큰 상처를 입는다. 가까운 친지가 목숨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감자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순이 삼촌이라고 하니까 남성을 연상하겠지만, 제주도에서는 친척은 아니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한단다. 요즘 우리말로 하면 순이 이모가 되겠다. 그녀의 갑작스럽고 허망한 죽음을 놓고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인생과 제주 4.3사건의 처참했던 상황을 들려주는 것이 이 이야기의 골자이다.
내 마음과 내 주위가 평안할 때는 온 세계를 내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대로 일이 안 풀리거나 주위 사람들 때문에 조금만 힘들어도 삶의 무게나 세상의 부담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글의 상황에서처럼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왜 이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너무나 아프고 힘든 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것을 그저 팔자라며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사회가 개인의 삶을 좌우하면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을까?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데, 이후에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에도 터무니없는 일이 그치질 않으니 더욱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이 책은 제주도 사투리가 많이 담겨 있어서 더욱 정겹게 읽힌다. 제주도 사투리는 눈에 선 단어들이라서 퍼뜩 읽히지는 않지만 정감 있어 좋다. 이 책에 실린 그의 나머지 글들도 참 좋다. 인생사의 아이러니와 허망함이 느껴진다. 그런 만큼 욕심 없이 살라 당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