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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어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0
팻 허친즈 지음, 박현철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림이 아주 재미있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 속에 심오한 내용을 담고서 많은 볼거리를 숨겨 놓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이 보인다.
거센 강풍이 불 때 생긴 일이다. 사람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이 가진 물건이 바람에 날아간다. 아저씨의 우산, 여자 아이의 풍선, 아저씨의 모자, 남자 아이의 연, 아주머니가 널던 빨래, 아저씨가 코를 닦던 손수건, 판사의 가발, 우체부의 편지, 깃대에 달린 깃발, 쌍둥이의 목도리, 신문기자의 신문 등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던 물건들이 죄다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몹시 거센 바람이라 누가 무엇을 들고 나타나든 모두 날려 버린다.
이렇게 바람에 날린 물건을 쫓아가다 보니 사람들은 바닷가에 닿는다. 그제야 바람은 거기서 멈추며 날리던 물건들을 모두 떨어뜨려 놓고는 바다로 간다. 바람은 이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흔든다. 얄미운 바람 같으니라고... 그림을 보면 다음 장면에서는 어떤 물건이 날아갈지 짐작이 간다.
그림 곳곳에 공을 들였다. 바다에 떠있는 돛대 달린 배에는 넵튠이라는 바다의 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판사가 서 있는 뒤편 법원 건물 꼭대기에는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천평칭을 든 정의의 여신이 세워져 있고, 신문기자가 서 있는 앞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뉴스-강풍(GAIL-FORCE WINDS)'이라고 쓰인 글도 있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연령, 인종, 계층,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누구도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다양한 어휘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읽는 재미를 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는 바람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굴뚝 연기, 나뭇가지의 흔들림 등이 오른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바람 부는 대로 오른쪽으로 쏠려가는 느낌을 준다. 왠지 독자도 무언가를 바람에 날렸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뛰어가야 하는 걸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