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흥미를 끈다. 마지막 거인이라니...거인이 진짜로 있기나 한 것일까? 신화에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 옛 사람들은 거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아니면 인간의 머리로는 가늠해 볼 수 있는 자연의 신비를 풀어보고자...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치볼드 레오폴트 루트모어는 늙은 뱃사람에게서 거인의 이라고 생각되는, 이상한 그림이 조각돼 있는 아주 커다란 치아 한 개를 사게 된다. 그는 이 치아를 들고 거인을 찾아 떠난다. 거인의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흑해의 원천으로 떠난다.
그는 인도의 캘커타를 지나고 미얀마의 마르타방을 통해서 흑해를 거슬러 오르는데, 이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가 간신히 살아남는다. 혼자서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거인의 발자국을 보게 되고 마침내 거인을 만난다.
아치볼드는 온몸에 나무, 동식물, 꽃, 강, 대양의 모습을 문신으로 새긴 거인 9명을 만나며 이들과 친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과 열 달을 보낸 아치볼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거인에 대한 책 9권을 낸다. 타이탄, 아틀라스, 키클롭스, 파타곤 등 거인족 신화와 전설에 주석을 단 연구서 두 권과, 거인족의 실존을 밝히는 증거와 여행담 한 권, 자신이 발견한 거인족에 대한 보고서 두 권, 거인족에 대한 삽화집 네 권을 출간한다.
이 책에 대해 찬반 여론의 분분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대학 강의를 제의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순회강연을 다녔고, 그 강연이 성공적이어서 두 번째 원장단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그의 마음 한 켠에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는 두 번째 원정단을 데리고 거인들에게 갔는데, 안타깝게도 거인들이 모두 작살에 맞아 죽어 있었다. 나중에 그는 많이 후회한다.
그의 말이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그네들의 비밀과 배반당한 우리의 우정도 함께 갖고 떠났다.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 속 깊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이런 말도 나온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버린 못난 남자.’
사실 처음에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기대했었다. 이렇게 허망한 끝이 기다리고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책 뒤쪽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지냈고 현재 이화여대 자연과학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의 ‘스스로 자기 집을 부수고 있는 인간들에게’라는 글이 실려 있다. 자연의 비밀을 캐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직업인 자신도 때론 그 비밀을 숨겨주고 싶을 때가 있다면서 말이다. 자연에게 길은 죽음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많은 자연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자연의 신비가 더욱 더 밝혀지고 있다. 이런 것들에 비춰볼 때 보전이냐 개발이냐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과연 어떤 것이 공생하는 현명한 방법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현재 우리 인간들이 안고 있는 당면과제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 책은 그림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어서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주제만큼 묵직한 그림 표현이다. 1992년 프랑스 문인협회 어린이 도서 부문 대상 수상작이고 1996년에는 독일의 라텐팡거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그 가치를 보여준다. 아무튼 머리글에 실린 표현처럼 이 책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을 낳아 준 자연을 파괴하고 살육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을 조용히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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