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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 - 행복한 동행
임후남 지음, 이재영 사진 / 생각을담는집 / 2010년 7월
평점 :
제주올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가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 떨린다. 제주도는 태어나서 꼭 한 번 가봤다. 직장 다닐 때 여름휴가에 친구들과 갔었다. 민박을 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산굼부리와 성산일출봉에 갈 때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힘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도 한림에서 협재, 중문을 걸쳐 표선과 함덕까지 알뜰히 돌아다녔다. 20년 전의 일이건만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건 그때의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리라.
큰 애가 몇 년 전부터 조르고 있다. 제주도로 여행 한 번 가자고. 아이들이 조금 크니까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아져 틈나는 대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이 하는 일이 길게 휴가를 낼 수 없는 관계로 제주도 여행은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너무나 소심했던 내가 부끄러워지고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혼자 두 아이를 책임지는 여행이 조금은 두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혼자 다녀온 제주올레가 좋아서 초등 6학년 아들을 데리고 다시 간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그 아들이 찍었단다.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아들이란다. 아이가 사진 찍고 엄마가 글을 쓰고...멋진 생각이다.
나도 걷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이들도 이런 엄마 덕에 어려서부터 걷는 것에는 단련이 잘 돼 있다. 그래서 더 그동안 뭉그적거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행복했다. 엄마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보통 때의 내 모습이다. 나도 주말에는 당일치기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나다닌다. 내 아이도 5학년이라 저자의 아들과 체구도 비슷하고 하는 짓도 닮았다. 그래서 내가 저자가 되고 그녀의 아들이 내 아들이 되어 함께 걸었다. 책을 덮었지만 제주올레의 상징인 간세 표시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동안 나의 여행은 차를 타고 박물관이나 명승지를 빠른 시간 안에 후다닥 둘러보는 조급한 여행이었다. 시간이 부족해서도 그랬지만 내 성격 탓도 있다. 두 아이 키우다 보니 성미마저 급해졌다. 이런 조급함 때문에 아이들을 기다려 주지 못해서 생기는 아이들과의 마찰을 없애기 위해서도 내게 올레는 필요한 처방이 될 것이다.
그래 결심했다. 내년 봄에는 꼭 두 아이 데리고 제주도에 다녀오리라. 책 뒤에 올레 코스 및 제주도 여행 정보가 잘 돼 있다. 이번 가을에는 그 준비 차 이 책에도 소개된 강화올레라도 다녀와야겠다.
아이가 밭일을 하던 할머니들이 비벼 주신 밥을 맛나게 먹던 이야기, 아이에게 인사해 주어서 고맙다며 귤을 주시며 나도 옛날에는 처녀였다고 하신 할머니, 올레에 사발면 두 개를 갖고 나와 팔던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올레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이에게 무엇이 기억나고 어떤 느낌이었냐고 꼬치꼬치 묻는데, 앞으론 그런 부담스런 질문을 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는 아이대로 느끼고 나는 나대로 즐길 수 있는 여행이 되어야겠다.
표지의 사진이 뭘까 궁금했는데 길에서 주운 막대기로 젓가락 흉내를 내면서 찍은 사진이란다. 아이가 이 여행에서 받은 행복이 저절로 느껴진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너희에게도 이런 행복 곧 느끼게 해줄게~. 일단 엄마가 즐거워지는 책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 참말이다. 엄마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라도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