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의학기술의 발달과 생활여건의 향상으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고령화 사회에 대한 걱정과 대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고령화가족’은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듯한 흥미로운 제목이다.
데뷔작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영화감독이자 이제 알코올 중독자가 다 된 이 가족의 둘째 아들이 화자다. 그는 마흔여덟 살로 영화감독 데뷔에 실패하고 아내에게 이혼당하지만 여전히 영화감독이라는 딱지만 붙인 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가 칠순이 넘은 노모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집에는 이미 쉰을 넘긴 큰아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 그 역시 전과 5범의 전적에다 제대로 된 가정조차 꾸려본 적 없고 번듯한 일자리 한 번 가져 본 적 없을 뿐 아니라 식탐만 많은 별볼일없는 인간이다. 이 집에 숱한 아는 언니들을 통해 술장사를 하고 있는 막내인 여동생마저 두 번째 이혼을 하고 중학생인 딸을 데리고 살러 온다.
이 가족은 평균 연령이 49세인 고령화가족이다. 모두가 이 정도의 나이라면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부모에게 독립해서 사는 것이 정상인데 이들은 이 나이에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엄마는 이런 자녀들을 쫓아내거나 야단치지 않는다.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마치 이들이 잘 먹지 못해서 세상의 패잔병이 된 양.
아무튼 이 가족은 이렇게 다시 모여 살게 되면서 그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놀라웠다. 나이 들고 실패한 자녀들이 엄마 집으로 몰려와 얹혀산다는 이야기야 흔한 것이어서 특별한 반전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주저앉은 삶에서 박차고 일어날 것인가를 기다리면서 읽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복잡한 가족 관계가 드러나니 더욱 흥미로웠다.
아무튼 이 가족은 평범한 가족이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으로서의 기능은 충실하다.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아픔도 헤아릴 줄 안다. 엄마의 집은 이 세 남매가 제대로 인생행로를 갈 수 있게 힘을 준다. 둥지 같다. 인생 실패자들로만 보였던 이들이 남은 생을 어떻게 꾸려갈지 궁금했는데, 모두가 평탄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집에서 힘을 충전하고 새 인생을 시작한다.
이들의 순탄치 못한 인생을 통해 다양한 삶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 뭐 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상처 많고 아픔이 가득한 삶을 실패했다고 손가락질하지만 그런 얼룩이 뭐가 대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예술만 긴 게 아니다. 인생도 길어졌다. 이전의 삶이 어땠던 간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패한 영화감독인 화자는 분리수거함 옆에서 주워 온 다섯 권짜리 헤밍웨이 전집을 읽으면서 헤밍웨이의 삶과 그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게 해준 것은 문제 많은 그의 가족이었다.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천명관’ 작가의 작품은 처음은 읽었는데, 앞으로 주시해 봐야겠다. 더불어 헤밍웨이의 작품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