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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짠
노희정 지음 / 책나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도 재미있다. 술잔이 아니라 <술짠>이다. 술잔을 ‘짠-’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잔을 살짝 기울인 것도 그렇고, 잔 밖으로 슬쩍 넘친 술도 감칠 맛 나게 잘 표현해 놓았다. 정말 술맛 땅기는 표지다.
그런데 내가 술을 먹은 본 것이 언제던가? 아주 오래 되었다. 이유는 책속의 ‘추억 속에 묻힌 술 이야기’에도 나온다. 30대 초반까지도 동이 나게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소주 한 잔은 고사하고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던 한 번씩 위궤양을 알았더란다. 나도 이런 이유다. 물론 그게 전적으로 술 탓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술을 가까이 하지 못하니 술이 더 그립다. 예전에는 나도 술기운을 빌어 맹송맹송한 정신으로는 남편에게 못할 말도 펑펑 퍼붓고는 했는데 요새는 그러지를 못하니 다소 아쉽다. 하긴 이제는 술기운이 아니더라도 무슨 말이든 다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술과 얽힌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많은 추억을 갖고 있기에 작가는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공감하고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 막걸이 주전자 들고 대포집으로 심부름 다니면서 골목길에서 주전자 주둥이에 입대고 막걸이도 마셔봤고 정신없이 마신 소주에 덕분에 변기통도 안아 봤고 필름이 끊긴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기억보다도 술을 너무나 사랑해서 꼭 반주를 드셨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주도 4단인 주광(酒狂)(작가의 말이었다)답게 작가는 훨씬 더 많은 추억을 갖고 있었고, 더욱이 술과 관련된 좋은 시들과 좋은 글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작가는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 편을 나눠서 술에 얽힌 이야기들을 술술술 풀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작가의 체험담이나 지인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이태백을 비롯해 유명 작가나 예술가들의 술에 얽힌 일화도 있다.
나는 고흐를 아주 좋아하는데, 책에는 고흐가 노란색을 많이 쓴 이유가 압센트라는 독한 술에 중독되어 황색증에 걸렸기 때문이었다는 글도 있다. 고흐의 빛나는 노란색의 비밀이 술 탓이었다니 다소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런 것이 술이 가진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조지훈 시인이 수필 <주도유단>에서 말한 술꾼의 18단계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어쨌든 술에 관한 시가 이렇게 많은 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거기에 더해 책에는 작가가 새로 지은 술에 관한 시들도 다수 적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틀림없이 시에 취하고 추억에 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기분 좋은 술 한 잔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인가? 예전에는 술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많이 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술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으면서 많이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이 책은 술 마시면서 화젯거리로 삼아도 좋을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이 책을 권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