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역사책을 좋아한다. 두 아이가 역사학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아동서로 읽기는 하지만 평소에도 역사책을 자주 읽는 편이다. 최근에는 내가 역사논술특강에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역사책에 더욱 더 관심이 생겨서 이 책도 보게 되었다.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자살 사건이 너무나 많은 요새 보기에는 제목이 섬뜩하다. 작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사건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 분이 한 나라를 책임졌던 전직 대통령이었기에 그 분의 그런 선택은 우리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고종은 암살되었다.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고종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 자체가 고종이 독살 음모를 알고 있었더라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끔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고종은 1919년 1월 20일 시녀들이 올린 식혜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날을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고종의 일생과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아들로서 풍양 조씨인 신정왕후에 의해 효명세자(익종)의 양아들로 입적이 되고 철종에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조선시대의 역대 왕 중에서 연산군 다음으로 욕을 먹는 왕이 고종이 아닐까 생각된다. 순종이야 워낙에 재위기간도 짧았고 그 존재감도 미약했던 왕이라 욕을 할 처지도 못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고종은 40년이 넘는 기간을 조선의 왕으로 있으면 나라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왕이라는 치욕스런 딱지가 붙어 있지 않은가? 또한 왕비도 지키지 못하고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는가?
고종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런 생각만이 지배적이었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를 고립무원의 처지로 만들었음도 알게 되었다. 왕으로 처음 등극했을 때의 고종에 대한 평가는 서로 상이한 것들도 있으나 어쨌든 고종은 세상은 변모되고 있고 따라서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양에서는 최초로 건천궁에 전깃불을 밝힌 것도 그렇고 서양인들과 만남도 즐겨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그가 사상의 개화는 이루어졌지만 리더십이 부족했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긴 옹졸한 태도 때문에 급기야는 나라의 통치를 일본인들에게 빼앗기는 사태를 초래했다. 왜 고종과 대원군 부자가 끝내 화합할 수 없었는지 너무나 아쉽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고종의 사진과 그가 쓰던 유물들이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떤 조선의 왕보다 내게 친숙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책을 통해 그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인물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여 그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이 생겼다.
어쨌든 고종은 급박한 세상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전통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고 대한제국을 자주 국가로 변신시키지는 못했지만 수십 년 동안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명석하기도 했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더 많이 회자되었던 명성황후의 빛에 가려, 내게 그는 거의 존재감 없는 왕이었는데, 비록 나라를 망치긴 했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나라의 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