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눈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게리 D. 슈미트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한번 손에 들면 결코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너무나 감동적이다. 나는 밤을 새워 책을 보는 타입은 아닌데 이 책은 정말 밤을 새며 새벽녘까지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고 나면 화도 무지도 나고 가슴도 너무나 아프지만 희망의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터너는 목사의 아버지가 메인 주 핍스버그로 부임하게 되면서 보스턴에서 이사를 온다. 이때만 해도 마을이 목사의 말씀을 따르고 그의 권위 하에서 마을 일을 의논하는 때다. 그리고 목사의 아들에게는 그 아들다운 행동을 강요할 때이다. 터너는 이곳으로 온 뒤부터는 자신에게 쏠리는 눈길과 마을 아이들의 텃세 때문에 몹시 힘들어 탈출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터너는 이사 온 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입방아 찧을 만한 일들만 하게 된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에게 야단도 맞고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도 곱지 않아 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위안은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터너는 바닷가에 갔다가 그 바닷가 맞은편의 말라가 섬에 살고 있는 리지라는 흑인 여자 애를 만난다. 그 당시에 백인이 흑인을 사귄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터너는 리지를 통해 숨막히는 일상에서 탈출하게 되고 리지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핍스버그 마을의 유력자이자 탐욕스런 스톤크롭은 마을의 개발을 위해서는 흑인들이 100년도 넘게 일궈온 그 말라가 섬에서 흑인들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목사인 터너의 아버지를 이 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터너는 리지를 볼 때 흑인이고 가난하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마을 사림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리지와 어울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 리지와 어울리면서 말라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항변한다.

  이런 그에 대해 스톤크롭은 목사의 아들은 마을의 뜻에 협조하지 않고 흑인 여자 애와 어울리고 있고, 목사인 그 아버지가 아들이 그렇게 하도록 방관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콥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집을 터너에서 상속하자 터너와 마을의 유력자들 간의 갈등은 고조되고 터너의 아버지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 야비한 인간들과 힘이 없어서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 가운데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외로운 사람의 힘겨운 투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싸움 구도는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이런 싸움에 때문에 세상에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터너 덕분에 그를 괴롭혔던 허드 윌리스도 변했고 처음엔 터너에게 트집만 잡았던 콥 할머니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는가? 터너의 어머니는 진작부터 터너의 편이었고 터너의 아버지 또한 이 마을에서 목사 직책을 잃게 될 것을 알았지만 정의를 위한 터너의 싸움을 지지한다, 마지막 눈빛으로. 터너가 머리를 다친 리지를 말라가 섬으로 데려다 주려고 처음 노를 저었던 배가 바다를 표류할 때 만난 고래의 눈빛과 같은 눈빛으로.

   고래의 눈,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궁금하다. 고래는 항상 우리에게 희망의 상징이자 힘을 주는 신비스런 존재인 것 같다. 우리와는 아주 먼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육중한 몸을 바다에 담고서 신비스런 물줄기를 뽑아 올리는 모습 때문인지... 하여튼 터너도 고래의 눈에서 바로 그런 희망의 빛을 봤던 것 같다.

   실제로 터너는 이 싸움에서 얻은 게 없다. 오히려 많은 것을 잃었다. 아버지를 잃었고 친구 리지도 잃었다. 목사가 될 뻔한 자신의 미래도 잃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변했다. 그들에게 정의를 알렸다. 이게 바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1912년 메인 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백인 목사 아들과 흑인 소녀 간의 금지된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아울러 정의가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특히 터너의 아버지의 자신의 생각을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터너에게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목사가 <종의 기원>을 읽다니...당시로서는 금서였을 텐데....그처럼 사람이 진화하면 할수록 정신도 진화한다는 뜻일 게다. 우리도 21세기에 걸맞는 정신을 가졌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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