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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응노 - 붓으로 평화를 그리다 ㅣ 예술가 이야기 2
김학량 지음 / 나무숲 / 2005년 8월
평점 :
화가 이응노(1904~1989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동베를린 간첩사건(1967년)으로 옥살이를 했고 1977년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의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작품 발표와 작품의 매매가 금지되던 비운의 화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 화가들이 궁금해서 관련 책들을 읽고 있기에 관심이 쏠렸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천하게 여겼던 아버지 때문에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20세 때에 서울로 와서 당시 서화계의 거장이었던 해강 김규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우리나라 전통 문인화와 서예를 배운다. 스승으로부터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고 1924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음으로 입선을 한다. 1933년에는 지인으로부터 고대 중국의 화가 고개지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라는 뜻에서 ‘고암(顧庵)’이라는 호를 받는다. 그 후 그는 전주에서 간판가게를 하면서 번 돈으로 일본 유학을 하고 서양화도 접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전통화법인 수묵담채를 즐겨 그린다.
귀국 후에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즐겨 그리고 하는 일마다 잘 되나 한국전쟁 때 큰 아들이 북한으로 끌려간다. 이 큰 아들을 때문에 1969년에 동베를린에 있을 때 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것이 백건우 부부 납치사건과 이어지고 결국에는 우리나라에서 빨갱이 화가, 간첩 화가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는 1957년에는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1959년에는 독일에서도 개인전을 연 뒤 1960년부터는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그 당시 그는 한자와 한글의 서예에 바탕을 둔 문자추상도 많이 그렸고, 프랑스 유학 시절에는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종이쪽들을 활용한 구성 작품도 만들다. 1964년에 프랑스에서는 동양미술학교를 열고 외국인들에게 동양화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자기 그림의 근본은 우리 글씨 예술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문자추상을 아끼고 즐겨했다. 이런 그의 그림에 대해 서양 사람들은 동양 예술과 서양 예술을 잘 만나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납치 사건 이후로 그는 우리나라 땅에 발을 들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광주항쟁이 일어난 뒤에는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지에 먹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재빨리 그린 듯한 <군상>이라는 작품을 여러 점 제작한다.
그는 1989년 1월에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날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참 힘든 삶을 살았던 화가였다. 그런 것 보면 예술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읽어본 화가들 중 편안하고 넉넉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 아픔이 있기에 그들에게서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과 화가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을 요즘 자주 읽지만 솔직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언제 이렇게 마음껏 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으랴? 책이니까 가능하지. 그리고 그런 멋진 작품 뒤에 감춰진 화가들의 일생을 조금 알았다는 지적인 만족감 정도를 얻을 뿐이다.
그래도 좋다. 아직도 그림은 내게는 소장하기에는 멀리 있는 고급품이지만 책의 소개된 작품들을 통해 눈과 마음만이라도 배부르게 할 수 있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