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 장애를 딛고 선 천재화가 어린이미술관 6
심경자 지음 / 나무숲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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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창이라는 화가가 듣지 못했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에 들어 있는 세종대왕의 초상화를 그렸던 분이라는 것도 안다. 이게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요즘 아이와 함께 우리나라 화가에 관한 책을 보는데, 그래서 이 분이 더 궁금해졌다.

  김기창은 일곱 살 때 장티푸스를 앓는 바람에 귀머거리가 된다. 어머니는 아들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일찍 알아채고 한글을 먼저 가르친 뒤, 김기창이 열일곱 살 때에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김은호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여보낸다. 그 뒤 그는 1937년 <고담>이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특선을 받고, 1940년에는 선전 추천 작가가 된다.

  1943년에는 선전에서 총독상을 받은 박래현을 만나게 되고, 1946년 결혼을 한다. 1945년에는 어머니가 지어주셨던 운포(雲圃)라는 호를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 운보(雲甫)로 바꾼다. 1950년 한국전쟁 동안에 미국인 선교사를 만난 뒤에는 바지 저고리를 입고 갓을 쓴 예수의 모습을 그린다. 그 이후에는 입체파적인 작품도 완성하고 우리나라 전통산수화의 느낌이 나는 작품도 그린다. 1963년에는 추상화도 그리고, 1976년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바보 산수’라고 해서 산수화이지만 자연의 풍경만 나오지 않고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모습이 같이 들어 있는 그림을 그린다. 매우 정감있는 그림들이다. 1980년부터는 한국농아복지회를 만들어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한다.

  그는 어느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창작 세계를 펼쳐 보인 점에서 ‘한국의 피카소’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베토벤 생각이 났다. 베토벤은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작곡하는 동안 굉장히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김기창은 오히려 들리지 않은 점 때문에 그림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책 뒤에 실린 그의 말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세계 속에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이렇게 그림에 몰두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나의 예술에 남다른 점이 느껴지는 것도 나의 오랜 침묵 때문에 생겨난 것일 겁니다. 나는 내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해서 우울해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사실 들리지 않아서 그림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겸손의 말이었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지만 그 재능을 살리기까지 장애 때문에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승화시켜 최고의 화가가 된 사람의 겸손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을 보면서 힘을 내야겠다. 작은 일에 좌절하지 말고 용기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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