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 새처럼 날고 싶은 화가 어린이미술관 8
김형국 지음 / 나무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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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장욱진은 까치를 많이 그렸다. 그래서 작가는 그가 새처럼 날고 싶지 않았을까 적어놓았다. 어쩌면 그는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선이 단순하고 어린이가 그린 듯하 느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아동화’ 또는 원시 시대에 그려진 바위그림인 암각화를 닮았다 하여 ‘원시화’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의 화풍이 어떠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자기들이 그린 그림과 닮았기 때문에. 또 복잡한 세상을 사는 어른들은 단순한 예술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선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들도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났으며 입골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옮겨온다. 보통 학교 3학년 때 1926년에 그도 모르게 일본인 담임 선생님이 전국어린이 미술대회에서 그의 그림을 보내 장원으로 뽑힌다. 그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 1938년에는 조선일보가 주최한 그림대회에서 <공기놀이>로 최고상을 받고 1939년 에는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로 유학을 간다.

  1943년에 귀국한 그는 국립박물관 직원으로 2년간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에 참여한다. 그는 그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리기보다는 대상의 형태만 그리는 방식을 택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전원, 집과 가족, 나무와 가축이 있는 마을 등 자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소재를 화폭에 담는다.

  6.25 전쟁 때에는 잠시 종군화가로 일하기도 했고. 1954년에는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1960년에 교수직에서 물러나서붙는 전업화가가 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즐겨할 뿐 걸어두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고 한평생 10호 미만의 화폭에만 유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유는 작은 그림이 친절하고 치밀하고 때문이라고 했단다.

  이런 그의 인생과 그의 작품을 이 책에서 마음껏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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