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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우장춘 ㅣ 살아 있는 역사 인물 1
김근배 지음, 조승연 그림 / 다섯수레 / 2009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장춘 박사를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 씨 없는 수박은 이 분이 개발한 것이 아니란다. 씨 없는 수박은 원래부터 개발돼 있던 것이고, 이 분이 개량한 좋은 채소 종자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육종학의 위력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분이 재배한 이 수박을 사용했던 것인데, ‘재배’가 ‘개발’로 와전된 뒤 굳어졌다고 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과학자의 업적이 오랜 세월 동안 잘못 알려질 수가 있을까? 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장춘 박사가 조선시대의 장영실처럼 우리나라에 딱 2명인 혼혈인 과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혼혈인이었다. 육종학 연구도 일본에서 시작했고 일본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뒤늦게 우리나라에 와서 주요 종자에 힘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육종학의 아버지’라 불리기 때문에 나는 우 박사가 우리나라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인 줄 알았다. 이래서 섣부른 오해는 금물이고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에 대해 이러쿵저렁쿵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명성왕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우범선으로서 그 일 때문에 일본에 망명했고 우 박사가 어릴 때 피살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 역시 충격이었다. 그래서 우 박사는 아주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불독’이라는 별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강인한 승부욕으로 일본 농사시험장에 취직해서는 염색체가 반만 있는 특이한 나팔꽃 연구와 화려한 완전 겹꽃 피튜니아의 개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 후 유채꽃 연구로 그가 소원하던 농업학 박사 학위를 받지만 승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키이 종묘 회사로 옮겨, 그곳의 초대 연구농장장이 되어 <원예와 육종>이라는 과학 잡지를 발간하고 채소의 일대잡종 육종법을 확립한다.
그러다가 해방 후 그의 뛰어난 능력을 알고 있던 지인들에 의해 우장춘 환국추진운동이 추진되고, 그는 결국 아버지의 나라인 우리나라에 귀국해 부산에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그동안 수입해서 쓰던 배추, 무 등 우리나라의 주요 채소 종자를 자급자족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업적에 대한 오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오게 된 것이 애국심 때문이었다는 오해 같은 우장춘 박사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얘기들이 실려 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그의 업적은 식물 종의 합성이론을 입증했고 채소 육종 기술의 체계를 세웠으며 우리나라의 주요 채소 종자의 독립을 이룩했다는 것인데, 이런 그의 수많은 업적들이 모두 씨 없는 수박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