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은경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난 참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웬만한 것은 거의 메모 없이 암기를 잘한다. 그리고 정말 하찮은 것들도 잘 기억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쓸데없는 기억 대신에 중요한 것들을 더 많이 기억한다면,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또는 그런 쓸데없는 기억 때문에 더 피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전에 뇌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중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의 기능은 기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기억들을 자꾸 없애주는 것이 뇌의 기능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보고 들은 그 잡스러운 것들을 뇌가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정말로 인생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면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뇌의 기능과는 전혀 상반되는 얘기여서 호기심을 갖고 들었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뇌의 그런 망각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가 해서 들춰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난 참 많은 쓸모없는 일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피곤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두뇌의 망각 기능을 사용해 좀 더 마음 편하게 살까 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두뇌 과학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저자가 생활 속에서 느끼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펼쳐 놓은 수필이다. 망각의 힘은 그 중 한 가지 이야기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대다수가 교훈적이다. 그렇지만 참 맛깔나게 잘 썼고 독특한 시각을 가진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새로운 시각의 소유자였다. 여러 가지 글에서 저자가 남다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앞으로는 바로 그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난 보통 책을 볼 때 작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 버릇이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문 사설 같기도 하고 신문사 논단 같기도 했기에 작가가 궁금해졌다. 작가인 도야마 시게히코는 일본의 영문학자이자 언어학자라고 한다. 알기 쉽고 분명하며 논리적인 일본어를 개척한 수필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일본어 및 일본 문학에 관한 글도 많다.

  이 책에서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망각의 힘’이다. 엮은이도 책 뒤에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해 놓았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보들 중 꼭 필요치 않은 내용이라도 남들에게 뒤처질까봐 불안해하면서 무조건 알려고 든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취합해 사고하는 능력인데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하는 데만 힘쓰다 보니 창의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망각’이 필요하다. 음식을 섭취한 뒤에 배설이 필요하듯 머리에도 망각이라는 지적 배설작용이 필요하다. 즉 지적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것만큼 능숙하게 잊어버리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는 말이다.

  아마 이 말은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말과는 일맥상통할 것 같다. 이미 뇌에 저장된 기억 때문에 새로운 사고를 하는데 방해받는 것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망각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내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시시콜콜한 일들을 잘 기억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바로 그런 일들에 집착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일에 집착을 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그게 장기기억이 되어 아예 저장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소소한 일들은 좀 지워버려 작은 일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야 되겠고, 또 무분별한 정보 수집보다는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색의 계절이라는 불리는 이 가을에 읽으면서 사고를 전환해 볼 수 있는 좋은 글모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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