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는 상대편이 정신의 사람인가 육체의 사람인가를 한눈으로 가늠하려는 버릇이 있고 또 대개의 경우는 그 가늠이 맞아떨어지는데, 어쩌면 그 버릇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54 쪽
만약 싸움이란 게 공격 정신이나 적극적인 방어 개념으로만 되어 있다면 석대와의 싸움은 그 날로 끝이었다. 그러나 불복종이나 비타협도 싸움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면 내 외롭고 고단한 싸움은 그 뒤로도 두어 달은 더 이어진다. -94쪽
저항을 포기한 영혼, 미움을 잃어버린 정신에게서 괴로움이 짜낼 수 있는 것은 슬픔의 정조뿐이다.-117쪽
그 아침까지도 석대가 보장해 주는 특전에 만족해 있던 나 자신을 내세울 수는 없었고, 그래서 정직하게 던진 표가 무효를 가장한 기권표였다. 변혁을 선뜻 낙관하지 못하는 내 불행한 허무주의는 어쩌면 그 때부터 싹튼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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