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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이는 울었다 - 구만이네 시골 마을 두번째 이야기 ㅣ 푸른디딤돌 저학년 문고 7
홍종의 지음, 이형진 그림 / 디딤돌(단행본)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정겨운 이름이다. 구만이-. 형의 이름은 천만이다. 왜 형은 천만이라고 하고 동생은 줄여서 구만이가 됐나 모르겠다. 억만이면 더 좋았을 텐데...
어쨌든 이름 값이 있어서인지 형 천만이는 공부도 잘 하고 아주 약다. 게으르고 은근히 동생 구만이도 괴롭히는 등 얄밉지만 공부를 잘 해서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는다. 반면 구만이는 늘 부모님께 야단맞고 형에게도 눌려 산다.
그런 구만이가 글짓기 대회에서 1등상을 받는다. 그 상품으로는 시골에서는 도저히 볼 수없는 36색 왕자표 크레파스다. 그 당시 아이들은 8색 크레파스밖에는 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36색 크레파스라면 정말 모든 아이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큰 상품이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12색 크레파스를 썼던 것 같다. 아마 최대 24색까지 쓰는 애가 간혹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얄밉게도 이 크레파스는 구만이 차지가 못되고 형 천만이가 쓰게 된다.
하도 이런 구박에 익숙해서인지 구만이는 몹시 속상하지만 잘 참는다. 왜냐하면 구만이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형인 명식이가 남들 몰래 돼지 한 마리를 갖게 된 것을 알고, 그것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그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를 받기로 한다. 그것을 발판 삼아 구만이는 목장주가 될 꿈을 꾼다. 어쨌든 구만이는 명식이 덕분에, 아니 자신의 노력 덕분에 돼지 한 마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따르는 법인가 보다. 친한 동네 친구인 송이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다. 송이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가자 송이 엄마는 서울로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구만이는 송이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 송이를 떠나 보낸다. 그리고 구만이는 눈물을 훔친다.
왠지 이 이야기를 읽고 나자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다. 언제나 이별은 슬픈 것이다. 이런 이별을 딛고 구만이는 성장하겠지..... 구만이네 시골의 정겹고 구수한 사람살이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옛 생각이 났다. 돼지도 키우고 이장님이 마이크로 방송도 하는 어릴 적 외할머니댁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의 옛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래봐야 불과 30년 전의 일일텐데 말이다. 예전에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살았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게 아이들에게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촌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구만이의 순수한 마음이 감동을 준다. 명식이가 시키는 대로 개구리도 잡아다 돼지에게 먹이고, 형에게 크레파스를 빼앗겼으면서도 크게 상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목장주가 되어 큰돈을 벌어서 공부 잘 하는 형을 멋진 대학생으로 만들어줄 꿈을 꾼다. 나부터 생각하는 요즘에 이렇게 형을 위해 희생할 생각이나 하겠는가? 이처럼 가족이니까 돕고 참아가며 살고 동네 사람들이니까 서로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공유했던 것이 우리네 전통이었음을 우리 아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