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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비운의 혁명가 ㅣ 아이세움 역사 인물 22
안재성 지음, 안소희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1월
평점 :
표지의 사진이 너무나 험상궂게 나와 있다. 부제로 달린 비운의 혁명가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왠지 도적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그동안 홍경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해 왔다. 당시말로 말하자면 역적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세상일이란 참으로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뒤로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 마주볼 수는 없는 그런 얄궂은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전이면서도 어떤 쪽으로 뒤집히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짐이 그런 것 같다.
만약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서 성공했다면 그는 어쩌면 한 나라의 왕이 되었을 수도 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여 그에게는 영원히 반란 주동자, 또는 역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그래서 혁명가라는 지칭에 생경함을 느꼈다. 우리 역사에서는 수많은 난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난을 일으킨 사람에게 혁명가라는 칭호를 붙여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것 또한 시대의 변화 탓일까?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그에게는 혁명가라는 칭호가 마땅한 것 같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가 일으킨 평안도 농민 항쟁은 농민들로 하여금 힘을 모아 조선 후기의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층에 맞서도록 격려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홍경래는 평안도 용강 출신으로, 홍 진사의 네 아들 중 셋째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장원급제감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주위에서 부패한 관리들의 부정을 보면서 개혁의 꿈을 품게 된다. 처음에는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리가 되어서 잘못된 사회에 대한 개혁을 꿈꾼다. 그런데 과거시험장에서 평안도 지방 인재에 대한 터무니없는 차별과 온갖 비리를 목격하면서 무력 봉기를 꿈꾸게 된다. 그러면서 치밀한 계획 하에 자금도 마련하고 군사 훈련도 시키고 평안도 지방에서 농민들의 지지도 이끌어낸다.
하지만 홍경래는 실전에서는 의욕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 작전에 대한 지도부내에서의 내분으로 인해 전투시기를 놓치게 되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 후론 특별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관군에게 밀리는 신세가 되고 결국에는 정주성에서의 치열한 전투를 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면 농민들의 봉기군에 대한 지원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농민들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른 세상이 오기를 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처럼 홍경래는 자신의 집권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의 혹정에 지칠 대로 지친 농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봉기했다는 점에서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가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을 적어 놓았다. 사상적 기반의 취약, 군사적 한계 등 여러 요소들을 패배의 요인으로 지적해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경래의 농민 항쟁은 예전 같으면 한 자리에 앉을 수도 없던 농민, 상인, 노동자, 양반, 지식인, 관리 등이 한마음으로 뭉쳐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농민 봉기나 정치적 반란과는 다른 것이라며 그 의의를 적어 놓았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홍경래의 난이라고 배웠다. 농민 항쟁이라고는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역사 속에 있었던 여러 사건 중 하나였다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그 과정과 의미를 되새겨보니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오늘날의 역사가가 해주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시간 속에 묻혀 그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일들을 드러내어 바로 알리는 일 말이다. 물론 이 사건도 해석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는 있다는 걸 늘 유념해야겠지만. 어쨌든 혁명가 하면 체 게바라 같은 서양의 혁명가만 멋지게 생각되었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세상을 개혁하고자 큰 뜻을 품었던 혁명가가 있었다니, 그를 알게 돼 반가웠다. 그래서 표지에 실린 그의 초상이 더 멋졌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