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남 - 민족 음악가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3
김별아 지음 / 사계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 전혀 이름을 못 들어본 음악가였기에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다. 개화기 때 활약한 천재 음악가라고 하는데 도통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광복 후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다가 쫓기는 신세가 되어 월북을 했던 음악가여서 그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지용 시인과 같이 다른 월북 예술가들처럼 말이다. 그랬다가 1988년에 그의 음악이 복권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순남은 화장품 가게를 하던 아버지와 선생님을 하던 어머니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다. 어머니에게서는 피아노도 배우게 된다.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던 김순남은 공부도 열심히 해서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와 경성사범학교에 동시에 합격하게 된다. 그렇지만 일제 치하에 있던 당시에 민족의 힘을 기르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일본인들의 차별이 심했지만 일본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그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음악부장으로서도 활동한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당시 일본 제일의 음악학교인 도쿄고등음악학원에 입학을 한다. 그곳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학교 비리 문제가 생겼을 때 학생 운동을 주동한 죄로 쫓겨나게 된다. 그 뒤 도쿄 제국음악학교로 전학을 했고 일본이 전쟁이 패할 기미가 보이자 귀국을 하게 된다. 귀국을 해서는 뜻이 맞는 친구들과 성연회라는 음악 모임을 조직하고 일본 음악과 서양 음악에 의해 멸시를 받던 민족 음악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그 후 광복이 되고 나라는 미군정의 통치를 받지만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은 고단하다. 그는 음악은 생활을 위한 음악이어야 한다며 노동자와 농민을 후원하기 위한 음악회나 문화제를 기획하게 되고, 이 때문에 사상을 의심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에는 임시로 피신해 있을 곳을 찾아 삼팔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게 된다.

  한때 북한에서도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재능도 인정받아 러시아로 유학을 가기도 하기만 결국에는 또 다시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의해 함경도로 유배되다시피 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보면 그는 대단한 음악 천재였던 것 같다. 일본 음악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 작가가 동맹의 부위원장인 하차투리안이 그의 곡을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답장을 보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는 광복을 위한 노래 <건국행진곡>이라는 것도 작곡했고, 미군정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되어 딸은 보지 못했을 때 작곡한 <자장가> 등 많은 곡을 남겼다고 한다. 여러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집도 냈고. 참으로 대단한 음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잊혀진 채 있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 의해 정의를 위해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민족 음악을 살리기 위해 무척 애썼으며, 음악을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도록 애쓴 그의 업적을 올바로 되새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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