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근대 조선을 울린 충격적인 자살사건들을 심층보도하면서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나라의 향방을 뒤흐든 큰 사건 위주의 역사서들과는 달리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삶을 자세히 보여줄 것 같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근대 조선사에서 자살하면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현해탄 선상에서의 바다로의 투신자살 사건이 떠오른다. 이들의 이야기는 윤심덕의 노래로도 유명한 ‘사의찬미’와 같은 제목의 영화 <사의 찬미>에서도 다뤄졌었다. 영화를 본지가 오래 되어서 그 내용을 잊기도 했지만, 이 사건을 생각하면 자신의 감정을 못이긴 감상적인 신여성의 연애실패로 빚어진 사건이라고 나도 모르게 정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윤심덕이 출생의 문제 때문에 서른이 다 돼 가도록 번번이 혼사가 깨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1920년대에 우리나라는 ‘제2부인’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유부남과 처녀와 살림을 차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인 풍토 때문에 윤심덕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게 돼서 급기야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게 된 것 같다.

  이 책에는 이처럼 그 당시 세상에 충격은 둔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시대적 상황을 설명해 준다. 근대조선의 사랑과 전쟁, 근대 조선 잔혹사로 나눠서 전부 10편의 사건을 소개해 놓았다. 가난 때문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홍등가에 팔린 여인 이야기,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 때문에 생을 마감한 이야기처럼 사랑에서 일반 가정사에서 빚어진 이야기에서부터 김상옥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까지 사회적인 상황에서 빚어진 자살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특히 문창숙 집단 따돌림 사건과 유전입학 무전 낙제 같은 입시 지옥 사건 등은 요즘에만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도 이런 일 때문에 자살을 부를 정도였다니 놀라웠다. 또한 남성 중심의 사회 때문에 소외된 여인들 간에 빚어진 동성애 사건도 충격적이었다.

  그런 사건들을 보니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 가나 똑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세월은 달라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생각을 했을지언정 그 사람살이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당시 기사에서 보여주는 글씨체와 사진들을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보여주지만 지금의 세상이 그 시대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되니 다소 씁쓸한 기분이었다.

  근대 여성들은 결혼을 하기 전에는 이전 사회와는 달리 여성에게 주어진 많은 자유를 누리면서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전과 달라지지 않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심한 심적 갈등을 겪으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데서 오는 갈등들을 풀 기회도 없고 해소할 창구도 없었기 때문에 쉽게 극단적인 방법들을 선택했던 것 같다. 

  김상옥과 나석주의 폭탄 투척 사건은 일본 압제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에 대해 그가 아니라는 이견도 있지만 일제의 탄압에 맞서고자 했었음을 세상에 여실히 보여주고자 했던 행동임은 분명했던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보는 순간 근대조선이 ‘그렇게 자살을 권하는 사회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의 탄압만 없었더라면 신분제로 꽉 짜여진 조선 사회보다는 살만 한 세상이 아니었을까?라고 나름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 제목이 생각났었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길래 술 권하는 사회일까? 지금은 그렇지 않을 사회일까?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근대 조선만 자살을 권하는 사회였을까?

  지금에도 그런 일은 참 많다. 다만 역사를 보는 시각을 달리 해 본 것일 게다. 왕과 권력층 중심으로 역사를 보던 시각에서 일반 백성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시각을 달리 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좀 더 역사를 자세히 보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자살’이라는 소재는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다른 역사 읽기 책으로는 충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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