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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재주 많은 조선시대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죽으면서 남긴 그림과 글이 들어 있던 붉은 비단보자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강릉에 사는 사대부 집안의 여식으로서 글과 그림에 재주가 능했었다. 자신이 직접 항아라는 이름을 지은 그녀에게는 가연과 초롱이라는 친구가 있었고, 기생의 자식인 초롱의 오빠인 준서를 연모했었다. 항아와 준서는 서로 신분이 달랐고, 또 타고난 사주에 재주 없는 남편을 만나서 단명할 것이라는 팔자를 타고났다는 항아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항아의 부모들은 항아를 준서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운명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노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대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되뇌어본다.
당시 신분제도 때문에, 또 남편 차별 때문에 여성에게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는데, 그런 속에서 살았던 우리 어머니들이 참으로 안됐고 존경스러웠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보면서, 자녀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어머니의 삶이 어머니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당시로서는 어쩌면 어머니를 부정한 여인으로 평가하게 되는 그런 유품들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일찍 죽은 남편을 위해 평생을 수절해서 열녀문을 받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로 여성의 희생만을 강요한 세상에서, 결혼 전에 사모했던 남자의 초상화와 글을 간직한, 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의 초상화를 간직한 어머니에 대한 자식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을까? 아버지의 자식 된 도리로서는 전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어머니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여인이다. 누구나에게 소중한 순간이 있었을 테고 간직하고픈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서로 수용하고 보듬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 같다.
항아, 초롱, 가연이 그 사는 형편이나 신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서로 친하게 지냈지만, 나이를 먹어서 서로 다른 인생의 길에 들어선 걸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운명이 있는 것 같고, 또 그런 것들은 부의 힘, 지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많은 재주를 타고 났음에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재주를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던 항아의 슬픔이 느껴진다. 우리 조선시대에 살았던 많은 재주 많은 여인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아 슬펐다. 가연의 삶에서는 불현듯 허난설헌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항아의 삶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른다.
현실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의 이야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잘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