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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평점 :
<녹나무의 여신>의 1편 격인 <녹나무의 파수꾼>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초승달이 뜨는 초하루 무렵에 녹나무의 몸통에 만들어진 굴에 들어가 초를 켜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염원하면 그 염원이 녹나무에 새겨졌다가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 염원을 받으러 간 사람에게 전해진다는 환상적인 설정이다. 이런 설정이 미신 같지만, 이런 설정 덕에 타인의 생각을 읽어 사건도 해결하고 타인의 소원도 들어준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녹나무의 여신>은 판타지 소설 같다.
<녹나무의 여신>에는 잠을 자면 기억을 잃는, 즉 기억을 하루밖에 간직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모토야라는 소년이 여고생 유키나가 쓴 녹나무에 대한 시를 읽고 그린 ‘녹나무의 여신’ 그림을 토대로 모토야와 유키나, 둘이 그림책을 완성한다는 이야기와, 신사에서 팔고 있는 유키나의 시집을 값도 치르지 않은 채 가져 가는 고사쿠라는 남자가 신사 근처 마을에서 일어나는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진범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 레이토에게 녹나무의 파수꾼 일을 맡긴 치후네 이모의 인지 장애와 기억을 하루밖에 간직할 수 없으며 시한부 판정을 받은 모토야를 위해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려는 모토야 부모를 통해 들려주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세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과 어울려 살며 기억을 간직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의 소중함을 들려준다. 나는 특히 타인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큰 레이토, 철이 없는 어른처럼 묘사됐고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보일 정도로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고사쿠, 인지장애를 앓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현명한 판단과 결정력을 보여준 치후네가 인상적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이 책은 강도치상 사건이 중심 내용이 아니고 사람들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주로 쓰는 추리 소설 작품들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비슷한 느낌이다.
<녹나무의 여신>의 핵심 메시지는 모토야와 유키나가 완성하는 그림책의 끝 장면에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인생이 10년 뒤에는 어떻게 나아질지가 궁금해 자신의 10년 뒤의 모습에 대해 녹나무의 여신에게 묻지만, 그 여신은 주인공이 기대했던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그보다 10년 뒤, 또 그 10년 뒤의 삶에 관해 묻지만, 여신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신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느냐.” 점점 더 미래에 대한 예측과 대비를 강조하는 시대가 되어 가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 책은 오히려 지금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현재에 충실히 살라고 조언한다. 그와 함께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헤아려 보면서 살라는 교훈을 준다. 나는 녹나무에 기념하는 행동이 바로 타인의 입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느꼈다. 아무튼 <녹나무의 여신>은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하면서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도 유지하고 있기에 한 번 잡으면 끝을 보게 만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가다. 강력히 추천한다.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