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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거리 ㅣ 창비청소년문학 58
김소연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영화 <박열>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아마 이 영화를 안 봤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다소 힘이 들었을 것이다. 박열은 일제 때 도쿄에서 ‘불령사’라는 단체를 만들고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와 여러 조선 사람들과 함께 사회주의운동을 펼쳤던 사람이다. 이들이 활동하던 때인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몰지각한 일본인들은 이것이 조선인들이 일으킨 방화, 약탈이라 오도하고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무차별살상했다. 박열은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중국에서 폭탄을 입수해 천황암살시도를 하려고 했는데, 그 전에 이 사실이 알려져 수감된다. 이후의 일들은 영화를 보시라.
이 책의 주인공 ‘동천’이 바로 그런 박열을 만나고 그로부터 감화돼 철저한 조선인으로의 긍지를 갖게 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한 길로 걸어들어 가게 된다. 동천은 종의 몸에서 태어난 양반가의 서자다. 종의 자식이라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학교 졸업을 앞둔 열여섯 살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동천은 운이 좋다. 달랑 차비만 갖고 일본으로 넘어가려 할 때도 자신이 우연히 한 선행 덕에 일본인 염색장의 도움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오사카에서 도쿄로 건너가 정착할 때도 이 사람의 도움 덕에 구마모토를 만나 중고서점에서 일할 수 있게 되고 꿈이었던 대학 입학도 하게 된다.
이렇게 도쿄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동천은 우연찮게 박열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하던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다가 박열측이 일본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마련한 시바공원에서 열린 노동절에 참여하게 되면서 투옥되기도 한다. 이후 동천은 불령선인이 되고 일본인들의 감시를 받는 대상이 되지만 박열이 체포된 뒤에는 박열의 뒤를 이어 불령사를 일으켜 세우려고도 하고 3.1만세운동 기념회도 준비하려고 한다.
동천이 일했던 서점의 사장인 구마모토는 “7년간 도쿄에서 살았다면 반일본인으로 살면서 편안한 삶에 안주할 수 있는데 왜 반도인으로서 감시당하는 삶을 살려고 하냐?”는 말을 한다. 동천은 자신은 조선이라고 강조하면서, 야만의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이 도쿄에서의 삶이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매우 흥미롭게 읽은 이 책을 통해 일본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단발령, 관동대지진 등 일제 때 조선인들이 받았던 핍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멋진 사람을 만났다. 그런 혼란한 시대에는 형섭 같은 기회주의자도 있고, 구마모토처럼 야쿠자이지만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이도 있다. 이들을 볼 때, 불의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시대 탓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바른 사고와 이성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