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클래식 보물창고 24
허먼 멜빌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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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슬픈 노래를 주로 부른 가수 중에 노랫말처럼 인생을 슬프게 끝맺은 이도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슬픈 배역을 하더니 안 좋을 일을 겪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말이 씨가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이름을 개명한 뒤 기분도 좋아지고 일도 잘 풀린다는 내용을 봤는데.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책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 바틀비가 했던, 수신자가 없어서 발송하지 못하는 우편을 처리하는 업무가 바틀비에게 끼쳤던 나쁜 영향을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수신자가 없어서 발송하지 못하는 우편물-그래서 소각해야 하는-을 처리하는 곳의 말단직원이었는데, 행정부의 개편으로 이 자리가 없어지면서 실직을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이 책의 화자인 변호사의 사무실로 필경사로 취업한다. 이 당시에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법률을 베껴 쓰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는데 이 처리를 위해 이 사무실에는 이미 2명의 필경사가 있었다. 이 두 명 또한 필경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적합하지는 않지만 변호사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이 둘을 감내한다. 그런데 바틀비에 비하면 이 둘은 아주 멀쩡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처음에 바틀비가 필사한 것을 대조해보자는 변호사의 말에 자신은 그런 일을 선호하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왔고 어찌 그런 직업인이 있나 화도 났다. 그럼에도 변호사는 동정심과 신사정신을 발휘하여 그의 처지를 수용하려 한다. 그런 변호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들어왔으니 큰일이 났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후에도 바틀비는 고용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그의 고용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내 생각에는 최선의 조치였다 생각한다.

그런데 바틀비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변호사의 선의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아무리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해도 꼭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 삶의 의욕을 잃어서일 것 같다. 벼룩을 작은 병에 놓아두는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못한 정도로만 뛰어오른다고 한다. 바틀비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발송되지 못하고 소각되는 편지를 보면서 소통의 부재와 억울하게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은 <모비 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작품인데, 책 뒤 설명과 그와 바틀리를 비교한 이야기가 나온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화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바틀비의 입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나 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고용주인 변호사는 바틀비를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의 도움에 한계가 있겠지만, 또 바틀비의 그런 도움조차 거부하는 체념적인 행동이 더 변호사를 자극해 동정하게끔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자기 삶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하여 살아가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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