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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고뇌하는 인간과 대면하다 - 2018년 세종도서 선정
정용선 지음 / 빈빈책방 / 2018년 6월
평점 :
내가 지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성취해야 할 과제로 정한 것 중 하나가 동양고전인 사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서와 성경의 완독이다. 논어와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어서 일부 구절들을 드문드문이라도 보기는 했지만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하다 할 만하다. 이처럼 철학적 지식 기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철학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동양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상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이기 때문이다. 하도 ‘장자’. ‘장자’에서 예전에 설명서를 한 번 읽어본 것 같은데, 설명이 어려워서 이해도 못했고 기억나는 것도 대붕과 호접몽밖에 없다. 그래서 장자의 사상을 쉽게 설명해 주는 이 책 <장자, 고뇌하는 인간과 대면하다>를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철학서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는 개념에 대한 이해는커녕 용어조차 생소한 장자의 사상을 여러 문학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적절하게 연관지어 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다소 쉽게 장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정용선이 이를 위해 선택한 작가는 프리모 레비, 알퐁스 도데, 가브리엘 마르케스, 엔도 슈사쿠, 알베르 카뮈이다. 이 중 엔도 슈사쿠는 생소한 작가였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이름을 익히 알거나 몇 작품 읽기도 한 작가여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들이 쓴 작품들이 그렇게 만만한 것들이 아니라서 그 참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도 얻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대붕과 호접몽에 대한 이야기는 세 번째 이야기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첫 번째로 소개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이다. 나는 <주기율표>가 말 그대로 화학원소를 소개해 주는 책인 줄 알았는데, 레비가 원소를 사랑한 만큼 원소도 소개하지만 그보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신의 삶이 비중이 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레비의 삶을 통해 장자가 말한 ‘지인은 마음을 거울같이 쓰기 때문에(至人 用心若鏡), 마음은 모두 사태를 감당하지만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勝物而不傷)’는 개념을 설명해 준다. 만약 이런 비유가 없이 장자의 개념을 소개했더라면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이밖에는 이 책에는 <별>, <마지막 수업>으로 널리 알려진 알퐁스 도데의 또 다른 작품인 <풍차 방앗간 편지>와 <스갱 아저씨네 염소>를 통해 장자의 각득기의(各得其宜)와 산목(散木)을 설명한다. 난해하다고 들었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작품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함께 호접몽 외에도 유무궁(遊無窮)과 미치광이를 뜻하는 접여(接與), 복합하게 얽힌 채로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영녕(攖寧) 등 여러 개념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중 읽기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긴 하지만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일본에서의 기독교 수용에 대한 문제를 다룬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하늘의 입장에서 사물을 비춘다는 인시(因是)에 대해 설명해 주며, 알레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와 <이방인>, <페스트>를 통해서는 카뮈 철학의 핵심인 부조리와 장자의 상아(喪我) 개념에 대해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내가 잘 몰랐던 새로운 개념의 이야기들이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바보 같은 말이겠지만, 기원전 370~290년 전 사람인 장자가 인간의 사유에 대해 그런 심오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범인인 나로서는 너무 놀랍다.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고, 우리 학생들에게도 철학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분명 그런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