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웅진 당신의 그림책 2
소윤경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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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그림체, 어디론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느낌, 꿈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힘든 분위기가 인상적인 그림책을 만났다. '웅진 당신의 그림책' 시리즈인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수연》은 오롯이 그림으로 이해하는 가족, 상처, 내면, 정체성의 이야기다.

 

엄마 없이 아빠와 살던 자매에게 새엄마가 남동생을 데리고 찾아왔다. 자매와 동생은 식성도 다르고 성별도 달랐다. 오랜 세월 잘 모르다가 갑자기 어울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만들어 줄 인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였을까. 서로를 향한 이해와 기대, 존중이 어긋난 것인지 가족은 물과 기름처럼 뭉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비극이 일어나고 좁히지 못한 틈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자매가 동생에게 했던 행동은 의도였는지, 사고였는지, 그냥 그렇게 일어났던 것인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이후 엇갈린 마음은 상대방을 더욱 비참하게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가족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걸까?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만든 걸까? 자매는 둘에서 한쪽이 된 채 가족이란 이불 속에 봉합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 가족은 행복했을까?

 

《수연》은 텍스트가 없어 그림으로만 상황을 유추해야 하는 그림책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잔혹동화일 수도 힐링 동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사건이 반영된 자전적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생각하든 '가족이란 틀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낯설고도 친근한 이중적인 심리를 선사하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참고로 소윤경 작가의 그림이 파주 지혜의 숲에서 열린다. 《콤비》,《호텔 파라다이스》, 《수연》 등의 그림 21점을 전시한다. 전시 공간은 책 한 권을 읽는 느낌의 해석이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무료 관람이며 오전 11시부터 월 23일부터 시작해 12월 5일까지 오후 6시까지 열린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방문해보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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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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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동명의 희곡을 집필하고 있는 K가 자칭 드라큘라라고 말하는 신비의 인물 요시야와 함께 도쿄를 거닐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요시아는 도시 괴담, 도시 전설 등 비밀을 가르쳐 준다며 K를 이끈다. 도쿄의 묘비명(에피타프 epitaph)을 찾기 위해 둘 은 이곳저곳을 떠돈다.

 

'피스'는 두 주인공의 일상을 그렸으며, K가 쓰고 있는 여성 킬러와 클럽 이야기는 '에피타프 도쿄', 요시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드로잉'은 세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섞이고 스며드는 장르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따라서 한 권의 소설집처럼 단행본으로 묶여 있지만 옴니버스 영화를 보고 있는 듯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마치 과월 호 잡지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라떼는 말이야", "그땐 그랬지"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딱히 소설이라는 장르 하나에 국한하기 보다 때로는 논픽션, 희곡, 에세이, 메모, 인터뷰 등 크로스오버 장르가 온다 리쿠를 사랑하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piece는 무색, drawing는 파란, 희곡은 보라, 메모는 분홍 등 장르 구분과 디자인적 아름다움도 살렸다. 실험적이 유연한 사고로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는 그가 픽션과 논픽션,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어제와 내일을 합하게 다룬다.

 

인상적인 것은 도쿄 올림픽이 결정되는 순간 이스탄불 올림픽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상상을 하는 대목이었다. 왜 하필 터키지 싶지만,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감이 좋고, 이슬람 국가 최초로 올림픽이 열리는데 그게 동양과 서양의 다리 역할을 했던 도시라면 큰 상징성을 갖지 않겠냐는 거다. 그게 21세기 정신에 걸 맞는 올림픽 선정이라는 말이다. 결국 일본은 올림픽을 1년 미루고 올해 개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소설 속에서나마 가정해 보는 이스탄불 올림픽을 상상해 봤다.

 

도쿄를 소재로 하기에 소설 속에는 도쿄와 관련된 영화도 소개된다. 자신을 흡혈귀라 말하는 남자와 대화를 하고,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도시 전설의 성격도 갖는다. 활기차 보이는 도시 사람들의 내면에 가득한 공허함, 그리고 가면 뒤에 진짜 표정을 봐왔다는 K의 말은 도시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된다.

 

읽으며 읽을수록 함께 밤 마실 가거나 도쿄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다. 하지만 친밀해졌다기보다는 붕 떠서 도시를 내려다 본 형태다. 소설이 좋았다면 봉준호, 레오스 카락스, 미셸 공드리가 각각 연출한 옴니버스 삼부작 <도교!>를 추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낯선 도시의 불통을 경험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좋겠다. 그래서 찾았나 모르겠다. 과연 도쿄에 어울리는 묘비명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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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일까.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고 알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할머니를 직접 세상에 나가 알아보라고 말한다. 오래 살았던 할머니도 선뜻 말해줄 수 없는 것. 사랑은 직접 느껴보는 거다.

 

소년은 답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길에서 만난 어부, 연극배우, 고양이, 목수, 농부, 병사, 병사, 마부, 시인 등 사람들은 각자 다른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소년에게 사랑의 정의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온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말이다.

 

돌아온 부쩍 소년의 키는 자라 있었다. 할머니는 떠날 때 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나이 들어 소년은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답을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물었고, 소년은 그제서야 답을 알 수 있었다.

책은 2017년 칼데콧 수상작 《홀라홀라 추추추》 등으로 유명한 카슨 엘리스의 신작이다. 미국에서는 12월 말 출간 예정이지만 한국이 전 세계 최초로 10월 20일 출간한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사유를 제공하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책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맥 바넷과 일러스트레이터 카슨 엘리스의 콜라보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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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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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물로 받은 지리산 공기캔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가 물을 용기에 담아 파냐고 했던 게 이제는 당연해진 오늘. 몇 년이 지나면 공기도 캔에 담겨 사 마셔야 할지 모른다. 나와 먼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내 일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다다라있다. 이제 기후 변화는 공포가 되어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왔다.

 

오늘도 친환경, 아니 필(必) 환경 생활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일회용품을 줄이기로 다짐한 지 몇 년째 장바구니와 텀블러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배달 음식은 단 한 번도 시켜 먹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짐은 늘어나고 부주의로 담긴 내용물이 흘러나와 난감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외부 음식을 포장해야 한다면 미리 포장 용기를 준비해 다녔다. 누구는 유난 떤다고 비아냥거렸고, 누구는 너 하나 그런다고 달리지는 게 있냐고 말했다.

 

"지구적 지질 시간에서 지구와 상호 작용하는 이 새로운 공동체는 ‘지구 공동체’라 불릴 것이다. ‘생태대’는 지구 공동체의 또 다른 뜻이다. 여기에서 발전한 개념이 자연과의 조화이며 자연의 권리다. 새로운 지구 공동체는 진화의 서사인 우주론과 거기에 터 잡은 지구-인간의 관계를 공동체 정신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지구법학의 철학을 형성한다. " P133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법(기후대응법)제정을 웊앞에 두고 있다. 책은 문명 전환의 원인과 배경,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환경을 소재로 책을 쓴 사람의 이력이 궁금할 것이다. 최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이다.

 

지난 10년간 공부한 사유적 생태학 세계관과 지구 거버넌스를 제시한 책이다. 정치, 사람과 지구라는 공동체 세계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 상황을 이야기한다. 자연에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팔을 걷어붙이고 지구를 위해 변론에 나섰다. 그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전반부에 있다. 환경 관련 소재의 책을 읽어 봤다면 앞부분 보다 후반부의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올해 개봉한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봤다면 심도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또한 영화 <듄>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스파이스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석유 같은 물질을 놓고 행성과 가문 간의 전쟁이 발발하는데, 지구에서 벌어지는 석유 전쟁과 생태학적 접근까지 담겨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니 훨씬 우리 행성 지구의 입장이 궁금해졌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변론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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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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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체중계에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철저하게는 아니지만 몇 몸무게를 관리하고 전날 먹는 음식과 운동을 생각한다. 전날 저녁 과식했다면 다음날 체중계의 숫자는 불어 나 있다. 예정된 절차처럼 죄책감이 몰려온다. 더 걷고 요가도 충실히 한다. 먹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인다. 그러면 숫자는 줄어들어 있다.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연예인의 후덕해진 모습만으로도 관리 소홀을 탓하며 비난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저 좀 먹고 싶었을 뿐이고, 더 게으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용납되지 않는다. 화면에 비치는 V라인 얼굴과 마른 몸은 내가 갖지 못한 환상이고 이를 비춰주는 연예인은 환상이다.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아플 때도 있다. 이는 일상에도 이어져있다. "너 좀 살찐 거 같다?"라는 말은 공공연한 안부 인사기도 하다. 그 말은 같은 유독 여성에게 듣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 외모를 관리하고 채근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는 자기 몸을 사회의 규정에 맞추지 않고 주체적으로 들여다보는 페미니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외모에서 벗어나 스스로 예쁨다는 것을 알아가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기라 볼 수 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주체-스스로 대상을 욕망하도록 부추김 당하는 사람-인 동시에 욕망의 주요 대상이며, 관능적이로 날씬하고 육체적으로 완벽한, 대대적으로 유포되는 이미지의 핵심 판매 도구라는 기묘한 임장에 처한다. " P41


이는 비단 식이장애뿐만이 아니다. 음식중독,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성욕, 야망, 채워지지 않는 쇼핑 중독 등. 풍족한 세상에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문제(낮은 자존감)라기 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 비만인이 많은 미국인의 허리둘레가 자제력을 잃는 그들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식품(가공식품, 인스턴트)를 쉽고 더 많이 소비하게 유도하는 문제점, 가난할수록 싼 패스트푸드를 구하고, 의료, 운동시설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저체중으로 태어나 유모의 묽게 탄 분유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최초의 포만을 누리지 못한 허기일지 모르지만 이후 다양한 갈등과 두려움이 커져 굶기로 이어진 듯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이후 '굶으면 어떻게 될까?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만 마신다면?'이란 호기심을 실험에 옮겨왔고, 이는 자제력이 만든 약간의 희열과 섞여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싶다.

​이로써 세상을 향한 불안함과 자아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어른 여성은 '굶기'를 통해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옆으로 누우면 갈비뼈가 옆구리를 찔러 냈고, 생리도 끊겼다. 쪼그라들고 변화되는 몸을 보며 이룰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책은 2002년 41세에 요절한 '캐럴라인 냅'의 자전적이고 인문학적인 에세이다. 24세 때 체중 41kg를 맴돌며 거식증을 진단받았다. 식욕은 불안한 단어였고 이는 알코올 의존으로까지 이어져 삶을 지배했다. 이후 폐암 진단을 받아 투병했으며 책은 이후 세상에 나왔다. 캐럴라인은 암 진단받기 2개월 전 책을 탈고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인지했던 걸까.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던 것 같다. 마치 출산의 고통처럼 책을 집필했고 여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한 뼘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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