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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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동명의 희곡을 집필하고 있는 K가 자칭 드라큘라라고 말하는 신비의 인물 요시야와 함께 도쿄를 거닐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요시아는 도시 괴담, 도시 전설 등 비밀을 가르쳐 준다며 K를 이끈다. 도쿄의 묘비명(에피타프 epitaph)을 찾기 위해 둘 은 이곳저곳을 떠돈다.

 

'피스'는 두 주인공의 일상을 그렸으며, K가 쓰고 있는 여성 킬러와 클럽 이야기는 '에피타프 도쿄', 요시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드로잉'은 세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섞이고 스며드는 장르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따라서 한 권의 소설집처럼 단행본으로 묶여 있지만 옴니버스 영화를 보고 있는 듯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마치 과월 호 잡지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라떼는 말이야", "그땐 그랬지"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딱히 소설이라는 장르 하나에 국한하기 보다 때로는 논픽션, 희곡, 에세이, 메모, 인터뷰 등 크로스오버 장르가 온다 리쿠를 사랑하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piece는 무색, drawing는 파란, 희곡은 보라, 메모는 분홍 등 장르 구분과 디자인적 아름다움도 살렸다. 실험적이 유연한 사고로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는 그가 픽션과 논픽션,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어제와 내일을 합하게 다룬다.

 

인상적인 것은 도쿄 올림픽이 결정되는 순간 이스탄불 올림픽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상상을 하는 대목이었다. 왜 하필 터키지 싶지만,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감이 좋고, 이슬람 국가 최초로 올림픽이 열리는데 그게 동양과 서양의 다리 역할을 했던 도시라면 큰 상징성을 갖지 않겠냐는 거다. 그게 21세기 정신에 걸 맞는 올림픽 선정이라는 말이다. 결국 일본은 올림픽을 1년 미루고 올해 개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소설 속에서나마 가정해 보는 이스탄불 올림픽을 상상해 봤다.

 

도쿄를 소재로 하기에 소설 속에는 도쿄와 관련된 영화도 소개된다. 자신을 흡혈귀라 말하는 남자와 대화를 하고,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도시 전설의 성격도 갖는다. 활기차 보이는 도시 사람들의 내면에 가득한 공허함, 그리고 가면 뒤에 진짜 표정을 봐왔다는 K의 말은 도시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된다.

 

읽으며 읽을수록 함께 밤 마실 가거나 도쿄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다. 하지만 친밀해졌다기보다는 붕 떠서 도시를 내려다 본 형태다. 소설이 좋았다면 봉준호, 레오스 카락스, 미셸 공드리가 각각 연출한 옴니버스 삼부작 <도교!>를 추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낯선 도시의 불통을 경험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좋겠다. 그래서 찾았나 모르겠다. 과연 도쿄에 어울리는 묘비명은 무엇이었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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