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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평점 :
《오늘의 덕질》은 《이웃덕후 1호》의 2편이라 할 수 있다. 2호라는 제목으로 갈 줄 알았는데 컨셉은 같고 총 7명의 덕후의 취미를 들여다본다. 매년 열리는가 보다. 미래엔 북폴리오에서 개최한 단편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내 덕질을 커밍아웃하고 세상에 더 알리고 싶다면 3회 공모전을 도전해 보길!
덕질은 더 이상 숨겨야 할 민망한 취미나 시선을 받을 게 아니다. 소수의 취미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 오랫동안 한 가지에 꽂혀 즐기고 쌓았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존경하는 형태도 있다. 올해 선정된 에세이집의 경향은 취마가 더 다양해졌다는 데 있다. 게다가 필력도 좋아서 읽는 내내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졌다.
단숨에 나를 사로잡은 건 외증조할머니로부터 시작된 SF 사랑이었다. 지구가 아니 우주, 그리고 생명체와 현상에 재미를 붙이고, 과학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윤리 덕후에 관심이 향했다. 의정부에 있는 집안 선산 이야기와 그로 인해 접했던 수많은 해적판 SF 책들.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그리고 심오한 정신세계의 소녀를 짝사랑하면서 내면이 성장하게 된 일.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의 실연 후 《그리폰 북스》로 영혼의 상처를 메우고 매우 철학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부터 매우 공감했다. 나도 몇 년 전 테드 창을 알게 되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한 챕터는 영화 <컨택트>로 만들어졌으니까. 그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언어학자와의 교류는 충격적이었다.
이후 저자는 아버지의 파킨슨병 발병과 할머니의 치매를 들어 소우주인 나와 가족의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가족으로 열어 가족으로 끝나는 서사까지 완벽 깔끔하다. 가족의 병이 가져온 시간은 힘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누군가를 조금은 알아가기도 한다. 이윤리 덕후의 'SF와 나의 이야기'(그러고보니 테드 창 제목의 패러디?)가 처음인 이유(대상)를 알 것 같았다. 매력적인 글맛이 살아있다. 소설 써 보시는 건 어떨지 싶을 정도였다.
두 번째 최우수상 책덕후 조소영 덕후 사연도 만만치 않았다. 책덕후와 사회성 부족의 연결고리를 화두로 던진다. 사회성이 떨어져 덕후가 되는지, 덕후가 되고 나서 사회성이 떨어지는지. 뫼비우스 띠 같은 논리다. 조소영 덕후는 후자라고 한다. 나도 나름 영화, 책 덕후라고 생각하는데 내향인은 맞지만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안 들어 봤는..; 아무튼, 책과 나만 있으면 된다는 간편하고 쉬운 취미가 독서란 말은 동의한다.
어릴 적부터 친구를 사귈 줄 몰라 집어 든 책이 친구의 기쁨도 알게 해주고 도서관에서 책 정리 일인자로 뿌듯함도 주었다. 목돈 100 만으로 전자책을 샀다니. 대단한 덕심폭발이라 리스펙하고 싶다. 그러다가 드디어 수많은 책의 바다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성인도서'. 당시 중학생이었던 덕후는 그 책이 버젓이 도서관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넘어 신세계로 떠나는 경험을 만끽한다.
나는 중고등학교 땐 그냥 조금 읽다가 대학생, 특히 사회 초년생 때 읽기 시작한 케이스다. 대학생이 되자 당시 연애, 알바, 공부 이 세 요소를 정신없이 돌리면서도 멋진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그때 인도의 성교 책을 보다가 후방 주의를 몇 번이나 맛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니, 덕후가 중학생 때 느꼈을 성욕 판타지의 신세계가 상상되기도 해 또 라떼를 만들어 봤다.
얼마 전 코엑스에서 도서전이 열렸다. 팬데믹 전에는 매회 갔는데 행사가 비슷비슷하고 상업적으로 바뀌어서 안 간지 3년 되었다. 대형 출판사가 도산하고 오프라인 강자였던 교보문고도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독서인구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도서전이 북적이는 건 아이러니다. 이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몇 년 전 책의 자릿세와 비용을 생각해 전자책으로 갈아탔다고 했다. 환경도 생각하고 참 좋은 발상이라 느낀다. 아직 활자 책이 좋은 나는 집 앞 도서관을 이용해 독서 중이다. 사는 동네 시스템이 동네 서점과 연계해 신간을 월 2회나 무료도 대여해 준다. 이렇게 고른 책은 지역 서점을 살리고 나도 키워준다.
세 번째 우수상인 여돌 덕후 김창경 덕후도 재미있었다. 자주 토요일에 한국영상자료원을 가는데 근처에 MBC가 있어서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에 온 팬들을 마주한다. 대부분이 소녀지만 나이 지긋한 중년, 혹은 이모팬도 더러 있어서 신기했다. 주변에 BTS의 초기팬이 있어서일까.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봤는데 이분은 여성 아이돌 덕후였다.
이분의 덕질 시초는 '하늘땅 별땅'의 '비비'였다. (랩퍼 비비 아님 주의) 당시 H.O.T 와 젝키가 인기있던 시절 비비라니 덕후 체질을 타고나셨다. 비비로 인해 세상과 마주하는 법, 관계 맺는 법, 오늘의 행복을 알았다니. 이런 게 스스로를 성장케하는 덕질의 순기능이다.
덕질장려 화이팅! 이후 유피로 넘어가고 여성 멤버 집에 들러 여러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직장 다니며 씨스타로 넘어가다 휴지기에 들어간다. 이유는 번아웃이 와서였다. 쉬다가 유튜브로 알게 된 게 바로 오마이걸. 곧 마흔 아줌마의 꺼져가던 덕질인생이 재정비 맞는 계기였다.
아이돌 덕후는 사계절처럼 피어다가 지는 아이돌계를 돌아보며 신선같은(?)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용기와 응원을 서로 주고받고 성장하는 계기. 선한 영향력이 준 나를 일으켜 준 거름, 그리고 키워준 바탕이 덕질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앞으로의 나를 위해 오늘도 덕질을 멈추지 않는 덕후들이 있는 한 세상은 한껏 윤택해질 거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