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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독
이기원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독특한 제목에 시선이 쏠린다. 2135년 22세기 디스토피아. 기업이 세상을 지배했고 그중 한국의 서울만이 살아남았다는 발칙한 상상. 이른바 '뉴소울 시티'로 새롭게 서울이 태어났다. K 콘텐츠의 인기로 당당히 한국도 SF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21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 최고 국가는 대한민국이었고 감염병으로 초화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울만이 살아남은 도시. 그것은 다름 아닌 삼성 공화국이라 불렸던 대한민국이란 가설이 흥미로웠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대기업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상상해 봄직한 발상이다.
회사를 경영하듯 도시국가를 관리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국민, 시민은 고객이라 부르는 철저한 기업화 통치 국가는 자유의 행복을 위해 서비스하던 방침을 고수한다. 전국기업연합을 줄인 '전기련'이 운영하는 시스템은 50년간의 태평성대를 뒤로하고 극소수의 상류층이 지원과 기술을 독점하는 구조로 변화하게 되었다. 대기업이 지배했기 때문에 '고객', '애프터서비스' 등 기존 단어의 뜻이 뒤틀려 버린 점이 서늘했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지배가 아닌 철저한 자본 논리로 지배되는 세상이다. 시간이 돈이 된 시대. 분각(돈)을 벌기 위해 카푸치노(각성제)를 먹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래야 싸구려 밀키트라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가 필수지만 늘 배고프고 충족되지 않는 의욕 부진의 삶. 때문에 시민들은 잔인한 살인 서바이벌 게임 한방으로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리부트 스타를 꿈꾼다. 1등 하기만 하면 신체 개선은 물론 1구역 주인이 되어 전기련 입사 자격까지 생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가장 큰 꿈이었던 '죽음'을 극복하게 되면서 좋든 싫든 반란이 꿈틀거렸다. 이 혜택은 극소수의 부자들에게만 가능했다. 죽음도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변화의 바람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한국형 SF 디스토피아 소설의 가능성
쥐독이란 자본에 의해 나뉜 고객이 쥐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지역을 말한다. 2구역에서도 쫓겨난 낙오자, 해고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사는 3구역에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최초 사건의 발단은 2구역 노동자 민준이 1구역의 최고 사치품인 루악(각성제)을 훔치면서부터였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기본 치안조차 되지 않는 쥐독으로 뛰어 들어갔다.
쥐독에 갇힌 채 굶주리다 못한 쥐는 서로를 잡아먹다가 결국 한 마리만 남게 된다. 그 쥐는 풀려났지만 이미 동족의 맛에 길들어, 또 다른 쥐를 해치기 시작한다. 국가통치기관 전기련의 회장이자 대기업 연랍 국가평의회 의장인 류신이 뉴소울 시티의 설계자다. 과연 쥐독에서 풀려난 쥐는 연대를 통해 반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빛나는 소설은 한국형 SF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출판사가 미디어콘텐츠 기업 페퍼민트앤컴퍼니가 새롭게 론칭한 출판 브랜드라서 그런지 영화적 이미지가 확연히 구현되는 소설이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마녀>의 제작사인 (주)페퍼민트앤컴퍼니가 만든 출판사였다. 첫 소설은 윤재호 감독의 소설 《제3지구》였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뷰티불 데이즈>, <파이터>를 좋게 봐서 그 감독의 소설이라니 매우 관심이 갔다. 이번 《쥐독》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다고 하는데, 이 감독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쥐독》의 SF 설정은 <블레이드 러너>, <레디 플레이어 원>, <인 타임>, <헝거게임>, <1984>, <설국열차>, <매트릭스> 등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 속에 단연 돋보이는 점은 한국이 주 무대라는 점이다. 그중 대기업이 지배하는 사회가 몇몇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니 낯설지 않아서 살벌함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아니라면 근미래 일어날법한 이야기라 신선했다. 또한 인간의 욕망 가득한 난제 '영생'을 극복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현재<승리호>, <정이> 같은 SF 대작들이 대자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대세에 편승해 탄탄한 스토리로 승부하는 K SF 콘텐츠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둘 다 스토리 부제와 캐릭터 빌드업이 부족한 만큼 이를 충족시켜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읽게 되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