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yureka01 > 품격은 무엇인가.-(내용추가)

전철로 출근 중에 내가 선 곳 바로 앞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잠시 후 나의 옆 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일어났다. 다음 역이 환승역이다. 자리에 앉고 보니 바로 옆 자리가 임산부 배려석이다. 바닥이 분홍색 표지도 붙어있다. 그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다가 내렸다. 임산부 배려석이 홍보가 되고 많이들 공감하는 때문인지 여기저기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조차 이 자리가 비었지만 냉큼 앉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하철이 출발과 정차를 두서너 번 반복하는 중에도 빈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다음 환승역에서 대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한 여자 승객이 빈 자리를 찾아 돌진하듯이 조금도 주저함 없이 앉았다. 안도의 숨소리와 함께.

그제 70 대 노인이 전철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를 때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유레카 님이 몰지각한 인간의 품격과 파렴치에 대해 쓴 글[1]을 읽었다. 공감이 크다. 나는 노인에 대해 말을 아끼겠다.

오늘 임산부 배려석이 잠시동안이지만 빈 상태로 남겨져 있음을 보면서 그 뉴스 속 임산부가 생각났다. 그 날 전철에도 임산부 배려석이 지정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처럼 비어 있었다면 그 임산부가 앉지 않았을까 싶다. 그 날은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를 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임산부는 하는 수 없이 노약자석에 앉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노약자석은 임산부도 앉도록 만들어진 자리이니까. 그러나 노약석을 노인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품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불상사가 이번이 처음이지는 않을 것이다. 노약자석만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임산부 배려석을 추가로 지정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마저도 임산부를 위한 자리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더욱 안타깝다.

평소에 전철을 타고 보면 현실이 또한 안타까운 점이 내 주위 사람들이 휴대폰에 고개를 떨군 채로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대부분 게임, 드라마, 카톡 등 실존하지 않거나 멀리 있는 존재에 정신이 팔린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도 모른다. 전철 소음을 이겨낼 정도로 커진 목소리 때문에 주위에 자기 사생활을 까발리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또한 나를 치고 가는 사람의 한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음을 보면 순간 화가 난다. 휴대폰이 중한 줄만 알지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게 되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적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대하면서 살고 있음을 매일 보게 된다.

그리고, 대중교통에서 좌석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이런 까닭에 나만의 좌석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욕심일 수 밖에 없다. 어쩌다 자리에 앉게 되면 그저 감사하다고,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라고 여기는 처세가 순리에 맞지 않을까.

임산부 배려석에서 개인의 욕심과 무관심이 합심하여 인간의 품격과 순리와 동떨어진 처신을 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다.

주1. 유레카 님의 글
http://bookple.aladin.co.kr/~r/feed/12129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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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30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는 노인석 임산부석 어린이석 장애인석 이렇게 다 따로 따로 만들어야 알아 듣는 시대가 된거 같아 씁쓸합니다..약자석이라면 병원에 치료 받는 환자라도 앉을 수 있어야하는데 어떻게 노약자석이 노인만 약자석이 된건지 말이죠...늙어도 기품있는 노인은 없는지 ..참 그런 분들이 그리운 시대입니다..멋찐 노인들.....

커피소년 2016-09-30 10:54   좋아요 1 | URL
“ 약자석이라면 병원에 치료 받는 환자라도 앉을 수 있어야하는데 어떻게 노약자석이 노인만 약자석이 된건지 말이죠. ”


매우 공감 됩니다.


노인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보다 더 건강해서 밀리터리 군복 입고 다니면서 특정 성향의 집회에 참석하고 술 파티도 하고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전신 운동을 돈 주고 하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정말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 불편한 사람을 위해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 어른의 미덕일 것인데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cyrus 2016-09-30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대폰 통화할 때 큰소리 내는 사람, 술 취해서 혼잣말하는 사람, 버스 정류장에 정차했는데도 자기가 내리는 곳에 안 멈췄다고 버스기사에게 반말하는 사람...

제가 등하교, 출퇴근할 때 버스를 많이 이용해요. 진짜 개념 놔두고 다니는 사람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