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낫지 않는 귓병 때문에 삶을 비관하게 되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로부터 25 년을 더 살았고, 불치병과 싸우면서도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난청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나서 청력을 거의 잃을 때까지 기간 동안 교향곡 제 3 번부터 제 8 번까지 작곡, 발표하였다.

교향곡 제 3 번은 ˝영웅˝ 교향곡으로도 불린다. 작곡가가 제목을 직접 붙였다. 작곡 배경은 이렇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을 열열히 환영하였고, 의회군을 지휘하여 혁명에 가담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영웅으로 생각하였다. 영웅을 찬양하기 위하여 베토벤은 1803 년 여름에 교향곡 제 3 번의 작곡을 착수하여 1804 년 봄에 완성하였다. 악보 표지에 Bonaparte라고 썼다. 악보 사본을 빈 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 하였지만 1804년 5월에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이 빈에 퍼졌다. 분개한 베토벤은 ˝그렇다면 나폴레옹도 범속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외치고는 악보 표지에서 그 이름을 뭉개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821 년에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17 년 전에 나는 벌써 이 슬픈 사건에 알맞는 곡을 써 두었다.˝고 말했다. 교향곡의 제 2 악장이 장송행진곡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후에 교향곡 제 3 번은 ˝한 영웅의 추억을 찬양하기 위하여… 영웅 교향곡˝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당시 후원자였던 로브코비치 공작에게 헌정하였다.

베토벤 교향곡의 작품 번호가 홀수를 투쟁적인 작품, 짝수를 평화로운 작품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범우사, 2007)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는 열광적으로 사랑에 열중하였다가 이내 배신을 당하고 쓰디쓴 고통을 맛보았다. 그의 격렬한 사랑과 오만한 반항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살았다. 우리는 베토벤의 영감의 가장 풍족한 샘을 이 교착에서 찾아내야 한다. (p30)

앞서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교향곡 제 2 번에 베토벤의 연정이 반영하였음을 말하였다. 작곡 당시 줄리에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1803 년 11 월에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해 버렸다. 베토벤은 이미 귓병으로 비참해진 상태에서 사랑의 괴로움까지 겪게 되었다. 로맹 롤랑의 말을 상기하면, 절망적인 위기는 오히려 베토벤의 영감이 되었다.

1804 년에 ˝영웅˝ 교향곡을 완성하고나서 교향곡 제 5 번을 착수했다. 위기 다음에 행복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교향곡 제 5 번은 작곡 순서에 따라 네 번째 교향곡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1806 년에 교향곡 제 5 번의 작곡을 갑자기 중단하였고 단숨에 교향곡 제 4 번을 작곡하였다. 행복이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1806 년 5 월에 베토벤은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와 약혼하였다. 그녀의 오빠 프란츠 백작은 베토벤의 후원자이면서 친구였고, 그녀는 줄리에타와 사촌지간이었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 사후 비밀서랍 속에서 발견된 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 속의 수신인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여인이 바로 테레제이다. 또한, 베토벤이 그녀의 여동생 요제피네한테 보낸 편지가 발견됨으로써 자매를 사랑하였음이 최근에 알려졌다.)

교향곡 제 4 번은 교향곡 제 3 번과 제 5 번에 비하면, 아주 대조적인 작품으로, 나중에 슈만이 말하기를, 북유럽 신화에 나타나는 두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 미녀와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곡을 중단한 교향곡 제 5 번과 하일리겐슈타트에서부터 구상해온 교향곡 제 6 번을 1808 년에 완성하였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와 ˝열정˝도 이 때 작곡하였다.

결국 약혼은 깨지고 말았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 잊지 못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다시 사랑에 버림 받지만, 고독함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게 되고 활동의 절정기를 맞게 되었다.

로맹 롤랑에 따르면, 베토벤은 1811 년과 1812 년 보헤미아의 온천장 테플리츠에서 휴양하면서 베를린의 젊은 여가수 아말리에 제발트와 매우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 사실은 당시 그의 작품에 아마도 가끔씩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베토벤은 1813 년에 교향곡 제 7 번, 1814 년에 교향곡 제 8 번을 작곡하였다. 작품을 출판하면서 각각 ˝대 교향곡˝과 ˝소 교향곡˝이라고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마음이 표출된 ˝웰링턴의 승리˝를 1813 년에 작곡하였다.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에서 교향곡 제 7 번과 제 8 번을 해설한다.

바그너가 말했듯이 베토벤이 〈제 7 번 교향곡〉의 피날레에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그리려 했는지 어쩐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p53)

〈제 7 번 교향곡〉만큼 솔직하고 자유로운 힘이 나타나 있는 작품은 없다. 그것은 초인적인 정력의 남용, 목적도 없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엄청난 낭비이며 기슭을 넘어서 범람하는 대하(大河)의 즐거움이다.
〈제8번 교향곡〉은 힘에서는 그렇게 응대하지 않다. 그러나 한층 더 기묘한 작품이고 그의 인간으로서의 특징을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 즉 비극과 희극이 뒤섞이고 아이들의 변덕과 놀이에 헤라클레스와 같은 억센 힘이 혼합되어 있다. (p53)



1814 년은 베토벤의 절정기였다. 빈 회의에서 베토벤은 유럽의 영광으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베토벤은 거의 귀머거리가 되어 있었다. 세상이 베토벤을 천재로 인정하면 할수록 그는 세상의 소리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영광의 시기 다음에는 베토벤 생애에서 가장 슬프고 참담한 시기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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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C2Avpt9FKP0 베토벤 교향곡 제 8 번 F 장조, Op. 93 "소 교향곡"I. Allegro vivace e con brioII. Allegretto scherzandoIII. Tempo de MenuettoIV. Allegro vivace• 연주자필하모니아 관현악단 (Philharmonia Orchestra)지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연주시간: 약 26 분.
 
 
겨울호랑이 2016-08-20 0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화정을 지지했던 베토벤이 프랑스 혁명을 부정하는 빈 체제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본인에게는 어떤 심정으로 다가왔을까요..동백림 사건의 최대 피해자였던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이 지금 정권에 인정받는 것과 비슷한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거서 2016-08-20 11:04   좋아요 2 | URL
베토벤은 인정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해요. 콧대 높은 왕족과 귀족들한테서 먼저 인사를 받았으니까요. 베토벤은 빈 체제 하에서도 제멋대로 굴었다고 하는군요. 공화주의자로서 당당한 행보는 음악 천재에 대한 예우로 묵인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정치를 했으면 어찌 됐을지 모르죠…

cyrus 2016-08-20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거서님이 베토벤에 관한 글을 꾸준히 쓰고 계시는데 북플은 ‘베토벤 마니아’를 만들지도 않네요. 오거서님을 베토벤 마니아로 선정합니다.

오거서 2016-08-20 10:54   좋아요 0 | URL
영광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8-20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오거서님 덕분에베토벤은 자신의 신념을 내면에 간직하고 살아갔음을 알게 되었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