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이다.
오전에 책을 찾다가 포기하고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아무 일이 없는 듯이 지내려는데 아내가 말을 걸었다.
혹시 들켰나?
도둑놈이 제 발자국에 놀란다고 하잖아.
가끔씩 속마음을 용케도 알아채는지라 즉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면서 응답했다.
나 자신은 페이퍼 쓰기에 바빴지만.
아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싶은데 예약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아내 손에 들린 아이폰에서 도서관 앱의 화면이 보였다.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책에 내 차례를 찜해 두는 것이라고 간략히 알려주었다.
3일 지나면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는데 그 전에 도서관에 직접 방문해서 대출해야 한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신간은 예약 대기자가 몰리기 때문에 금방 빌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니면 예약하고 바로 빌릴 수 있다고 하니까,
어떻게 아는지 다시 물었다.
대출 중인 도서에 예약자수가 표시되어 있는 앱 화면을 다시 보여 주었다.
아내가 읽고 싶은 책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저자는 지나영.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 의사여서 유명해진 것 같은데
대구 카톨릭대학교 병원에서 탈락한 후에 미국에 가서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를 책으로 썼다고 하더라.
평소 kbs 인간극장을 좋아하는 아내가 분명 좋아할 만한 읽을거리를 찾아낸 것 같다.
대출 가능한 구립 도서관 9 곳 중에서 8 곳에 이미 예약자가 있었다.
많게는 3 명이 대기한 곳도 있었다.
나머지 한 곳은 예약이 되지 않았다.
예약 버튼이 연한 색으로 변해서 눌러지지 않았다.
이 책 인기가 많아!
오늘 빌리지 못하면 빨라도 한달쯤 후에야 차례가 올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내가 당장 가서 대출해서 오겠다고 했다.
아내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고생길이 될 것이라며 함부로 나가지 말란다.
당장 읽지 않아도 된다며.
어제 오늘 내가 책과 씨름(?)한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지 않은가,
독서 의지가 강한 때에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씨가 고마워서
아내 대신 도서관 행을 결심했다.
또한 주말 독보적 챌린지 달성해야 해서 걸어야 하니까.
예약자가 없던 성북정보도서관은 집에서 제법 멀다.
버스를 타면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서는 언덕을 상당히 올라야 한다.
숨이 가빠지면서 쉬었다 가자는 마음이 들 때쯤이면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집에서부터 걸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오랜 만에 도서관에 가는 날이 하필 한여름 무더운 날인지.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
걸음수가 늘어나는 만큼 땀 분비 양도 많아지더라.
땀이 정직하다는 말이 있던가.
도서관은 엄청 엄청 시원했다.
높은 곳에 지어놓은 냉동 창고에 들어온 것 같았다.
바로 문 열고 나가지 않으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느낌.
도서관 앱에 표시된 분류 번호를 믿고 도서관 서가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직원 찬스를 썼다.
직원은 한 명만 보였다.
안내 데스크를 지키며 책을 읽고 있다가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갔던 서가가 아닌 곳에서 책를 꺼내 왔다.
신간이어서 따로 모아 둔다고 했다.
맞아,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랴.
신간이 모인 책꽂이를 둘러 보았다.
3 단 책꽂이 5 개가 2 열로 배치되었고,
책꽂이 단마다 대분류 번호 순으로 듬성듬성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신간으로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뽑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한 권을 더 골랐다.
<식물의 방식>은 판형이 작고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가려면 이제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하는데 …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인 대출이 가능헀다.
회원증을 갖다 대고 책 세 권을 올려 놓고서
모니터를 보면서 대출 버튼을 터치 하여 대출 완료.
편한 건지 좋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대출한 책들을 챙겼다.
아내가 반기는 모습을 떠올리니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