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이 때 여행한 기록과 감흥을 담은 책이 <이탈리아 여행>으로 1816년에 출간했다. 그 당시 괴테는 <서·동 시집>을 한참 쓰고 있었다.
<서·동 시집>은 독일어로  West–östlicher Divan, 영어로 West–Eastern Diwan. ‘서·동‘은 독일과 중동(이란) 간의 교류, 더 나아가서 라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  14 세기경에 생존한 이란 시인 하피즈가 지은 <디반(시집)>을 동양학자 요제프 폰 해머가 번역하였고, 괴테가 읽고 동방의 신비로움과 이슬람의 관능미에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시의 영감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시들해진 괴테의 시작(詩作) 능력이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편, 괴테는 1814년 여름에 라인 지역과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을 방문하는데 친지인 은행가 빌레머(요한 야코프 폰 빌레머)의 약혼녀 마리아네를 알게 되어 서신을 주고 받았다. 60대인 시인이 (마음은 여전한 청년) 자신을 환대하는 여인을 흠모하는 사랑의 노래를 지었고, <서·동 시집>을 탄생시켰다.
괴테는 자신과 마리아네가 연서(戀書)를 주고 받았듯이 시집에서 하템과 줄라이카가 주고 받는 연가(戀歌) 형식의 시를 지었고, 12개 서(書)로 나뉘어 시집을 구성하였다. 괴테가 시작에 몰두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동양과 서양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더 이해하기 쉽도록 역사적 인물, 사건, 용어 및 장소에 대해 언급하는 ˝메모 및 쿼리˝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시집에 추가했다.  <서·동 시집>은 12개 서와 산문연구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 (Besseren Verständnis)가 함께 있다. 1819년에 발표하였고, 1827년에 개정된 <신 디반>(Neuer Divan)이 나왔다.
괴테는 동양과 서양의 교류를 시도한 뿐만 아니라 음악과 인연이 남달랐다.
1921년에 괴테한테 친구가 펠릭스 멘델스존을 소개했다. 70대인 괴테가 12 살의 멘델스존을 처음 만났고, 괴테는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괴테는 친구와 대화에서 ‘그 아이‘에게 크게 감명을 받아 모자르트와 비교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멘델스존은 이후 몇 차례 더 초청을 받았고, 괴테에게 영감을 받아 그의 시에 곡을 붙이는 등 여러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서·동 시집>에 수록된 시에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휴고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등이 곡을 붙였는데 시집은 후대에까지 영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서·동 시집>은 괴테의 후기 작품으로 중요성을 가지지만,  동양과 서양을 결합하려고 시도한 그의 노력 역시 후대에 계속 전해져  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 계)와 다니엘 바렌보임(유태 계)에 영향을 끼쳤고, 둘이 합심하여 1999년에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결실을 이루었다.  사이드가 2003 년에 사망하였지만,  공동 설립한 바렌보인-사이드 아카데미가 2016년 12월에 문을 열어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클래식의 발견> 저자인 존 마우첼리도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서 책에서 고전음악의 힘과 기쁨이 국경과 무관함을 상기시킨다.

˝이어지는 글에서 나는 청취의 기술을 살펴보며 아울러고전음악이 어째서 서양 예술과 인간 표현의 정수인지, 그리고 1700년대 초반 유럽에서 발달한 지역적 현상이 어떻게 전 세계적인 문화가 되었는지 보여주려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구상에 국가와 문화를 가르는 경계선 따위는 없다.
바렌보임이라면 당연히 이런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그는(작고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동으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 아랍 · 이란의 젊은이들로 이뤄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도 했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주축이 된 이 오케스트라는, 대부분이 기독교도였던 백인 남성 유럽인들이 작곡한 음악을 연주한다. 젊은 단원 한 사람은 이곳을 두고 ˝인류의 실험실˝이라 불렀다. 국경없는의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치유의 힘을 가진 보편적인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고전음악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내준다. 평생에 걸쳐 즐길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준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모습이 바뀌듯 고전음악도 모양과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여러분이 고전음악을 더 많이 즐기도록 돕고 싶다. 고전음악의 기쁨에는 끝이 없다.˝ (17)

올해 신년음악회에서 지휘자로 나선 리카르도 무티가 텅 빈 객석 대신에 카메라를 향해 돌아서서 짧지만 강력한 멘트로, 음악의 힘으로 세계 평화를 지키고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하자고 힘주어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코로나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처음 맞는 신년음악회라서 더욱 인상 깊었다.
나는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웨스트-이스트 디반‘ 표기 자체가 잘못 된 것인 줄 알고 내 눈을 의심하였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니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때는 얼굴에 웃음기조차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흐뭇하다.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의 명예 회원으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게리히가 위촉된 것도 알고 있다.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히지 않을 이름이다. 음악의 기쁨을 알고 음악의 힘을 믿기에 <서·동 시집>과 함께 ‘웨스트-이스트 디반(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는 반가운 이름이기도 하다.



반가운 신간 소식이 있다. 국내에 <서·동 시집> 번역서가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음에도, 나도 한 권 가지고 있지만, 지난 7월에 <서·동 시집> 번역서가 새로 나왔다. 괴테 전문 연구자인 전영애 교수가 ‘새롭게‘ 번역하는 괴테 전집의 일환이다. 20권 예정된 새로운 괴테 전집의 첫 번째가 2019년에 발간되었다. <파우스트>로 2권 구성. (1권 620쪽, 2권 892쪽) 괴테 전집의 두 번째가 <서·동 시집> (544쪽)

이제껏 국내에 제대로 된 괴테 전집이 없었다고 하며 전영애 교수가 방대한 괴테 전집을 1인 단독 번역하는 최초 사례가 될 것이라고 하니 괴테 전집이 완성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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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2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전음악의 기쁨에는 끝이 없다]
동감합니다!!🖐 ^^

막시무스 2021-09-23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렌보임이 우리나라에서도 서동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로 공연한 적이 있는것 같기도 한데요..가물가물하네요..ㅠ.ㅠ....저는 오래전 서동오케스트라라는 말을 들었을때 신라 서동요를 컨셉으로 동양풍의 한국적인 연주를 뭔가를 하나보다하고 대충 넘겼는데 깊은 이야기가 있었네요!ㅎ 덕분에 오늘도 한수 배웁니다. 즐건 하루되십시요!ㅎ

오거서 2021-09-23 11:37   좋아요 1 | URL
저도 기억합니다. 2011년에 내한 공연하였어요. 임진각에서 평화콘서트가 열렸고 tv로 중계하는 방송을 보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바렌보임이 잔뜩 찌푸린 표정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기대보다 실망감이 컸던 기억이 나요. 사실 오케스트라보다는 지휘자인 바렌보임이 워낙 유명해서 관심을 모았었죠. 그 당시 바렌보임과 동행한 오케스트라 이름이 ‘서동시집’이어서 제 눈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한 이름으로 대하지요. 비밀스런 이름에 대한 실체를 알고자 시집을 구입했다는 … 괴(테)알못이면서 ㅎㅎㅎ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